[인터뷰] 문창용·우광훈 감독 “영화 자체가 무형의 산물…관객과의 대화, 벌써 설렌다”

입력 2018-09-0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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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개막하는 ‘2018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의 핵심 섹션인 ‘아리랑 마스터스’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오른쪽)과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 두 감독은 “영화 자체도 무형의 산물이지 않느냐”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무형유산의 키워드를 영화 속에 녹여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6일 개막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나서는 두 감독 문창용·우광훈

‘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
인도 라다크 승려들의 여정 담아
1000년 넘게 이은 독송의식 압권
사람의 넋과 구세대의 정신 전달

‘직지코드’ 우광훈 감독
구텐베르크 발명은 고려의 영향?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비밀 여정
다이내믹한 서사로 호기심 자극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보이지 않으면 자칫 그 소중함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형체가 없지만 사람의 손과 손, 정신과 정신을 통해 오랜 시간 계승돼 온 무형유산도 그렇다. 어찌 보면 영화라는 장르도 무형유산의 한 갈래일 수 있다. 손에 잡히진 않지만 그걸 보는 이의 마음과 정신을 위로하고 때론 자극하고 있어서다. 올해 5회째를 맞는 ‘2018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는 영화를 통해 무형유산을 향유하는 아시아 유일의 영화제다. 6일 개막해 나흘간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린다. 15개국에서 초청된 27편 가운데는 ‘상의원’, ‘패왕별희’처럼 친근한 장편 극영화부터 ‘코코’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망라해 있다.

영화제 핵심 섹션인 ‘아리랑 마스터스’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47)과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46)을 개막을 앞두고 만났다. 최근 극장 개봉 다큐영화 가운데 돋보이는 성과를 낸 이들 영화에는 무형유산의 키워드가 녹아 있다. 두 감독은 “영화가 담은 소재나 방식을 떠나 영화 자체도 무형의 산물이지 않느냐”며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는 일은 늘 기다려지지만 이번엔 어떤 대화를 나눌지 더 궁금하다”고 했다. “답할 준비가 됐으니 많은 질문을 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문창용 감독의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사진제공|엣나인필름


● “앞선 세대의 정신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무형유산”

문창용 감독은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통해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이다. 9년간 제작해 완성한 영화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인도 북부 지역 라다크에 사는 린포체(전생의 업을 이어가려고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 앙뚜와 노스승 우르갼의 여정을 담았다.

영화에는 라다크 승려들이 부처의 철학을 담은 경전을 암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다크의 이런 독송의식은 1000년 넘게 이어진 무형유산 가운데 하나. 문창용 감독은 “촬영할 땐 ‘유산’이라는 키워드를 생각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사람의 넋을 전달하고, 신뢰를 나누고, 구세대의 정신과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것 모두 무형유산인 것 같다”고 했다.

기나긴 작업 뒤 완성한 영화는 크고 작은 성과 속에 극장서 개봉해 관객과도 만났지만 감독은 여전히 앙뚜 스님과 스승 우르갼을 마음에 품고 있다. 올해 초 다시 라다크를 찾아 일주일간 머물다 온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무엇을 찍을지 고민하지 않고 바라본 라다크의 풍경은 예전과 극명하게 달랐다”며 “14살이 된 어린 스님(앙뚜)과 밤새 대화를 나눴고, 우린 스님이 스무 살이 될 때 다시 영화를 찍자 약속했다”고 털어놨다.

린포체는 라다크 말로 ‘고귀한 존재’. 그곳 사람들은 1400년간 환생을 믿고 살아왔다. 문창용 감독은 “21세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물을 수 있지만, 척박한 땅에서 다들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 마음에 린포체가 있어서”라고 답했다.

우광훈 감독의 영화 ‘직지코드’. 사진제공|엣나인필름


● “사람과 사람으로 전달되는 연결과 부딪힘, 무형유산”

우광훈 감독의 ‘직지코드’는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비밀을 밝히는 여정을 다룬다. 서양에서 처음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에게 고려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 프랑스와 바티칸 등 5개국 7개 도시를 찾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화 ‘다빈치 코드’ 못지않은 다이내믹한 서사를 통해 호기심을 단번에 자극하는 이 영화는 직지의 존재는 물론 불교 정신과 철학을 담은 그 책의 내용과 의미까지 주목한다.

우광훈 감독은 “직지는 우리민족이 자랑스러운 문화재로 추앙받지만 늘 기술사적인 부분만 강조돼 왔다”며 “‘최초의 발명’ ‘최초의 책’ 외에 직지라는 두 글자의 의미는 주목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린포체의 해맑은 웃음을 본 우리가 느끼는 행복, 바로 그 마음이 직지가 담은 키워드와 같다”고 했다.

감독은 그야말로 몸으로 부딪히며 ‘직지코드’를 완성했다. 특히 직지를 보관중인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그를 반길 리 없었다. 촬영분량 전체를 도난당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감독은 여러 성과를 낸다. 1333년 교황 요한22세가 고려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도 그 중 하나다. 감독은 “교황의 편지 진위가 공격받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견한 건 결국 사람”이라며 “오랜 시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달된 동서양의 연결과 부딪힘을 무형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영화를 전공한 우광훈 감독은 “서로의 이해가 대립하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에 잘 어우러지지 않으면 점차 우리의 근본을 찾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며 “나는 영화로 무형을 기록하는 사람인데,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제는 소중하다”고도 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오른쪽)과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차기작 구상…기록의 여정은 계속

이들 감독은 차기작 구상도 활발히 이뤄가고 있다.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직지코드’와 만나 다큐멘터리의 세계로 들어선 우광훈 감독은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 소재의 극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시작하는 건 ‘직지코드’ 후속편.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 촬영에 돌입해 또 한 번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1편을 찍을 때 아비뇽 교황청에서 한자로 된 많은 책을 봤다. 해석하지 않은 채 남겨둔 그 책 안에 고려와 유럽의 교류 흔적이 분명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다.”

문창용 감독은 벌써 4년째 인도네시아 쓰레기마을에 사는 소녀 이야기를 찍고 있다. 얼마 전에도 촬영을 하고 돌아왔다는 감독은 “쓰레기더미에서도 꿈을 꾸는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무얼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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