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재 “어릴 땐 원망도 했지만 이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입력 2019-02-19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연기자 이정재는 새 영화 ‘사바하’를 “감독을 믿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길 잘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나만의 것을 고집하고 싶지 않다”는 그는 목소리 높낮이까지 치밀하게 계산하며 영화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사바하’ 주연 이정재

박 목사역 발성 위해 스무 번 레슨
후반 내레이션 녹음…수없이 반복
오컬트라기보단 미스터리 스릴러
방부제 외모? 요즘은 액션 힘들어


자신의 과거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누군가에겐 겸연쩍은 과정이지만 어떤 이에겐 학습의 기회가 되는 모양이다. 배우 이정재(47)는 자신의 옛 모습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간혹 TV 채널을 돌리다 과거 출연 영화가 방송되고 있을 때면 그대로 멈춰 관찰하곤 한다. “유사한 실수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 민망해도 일단 지켜본다.(웃음)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대체 뭐가 문제였나. 굳이 찾지 않아도 다 보인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만약 다시 촬영한다면 과연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답은 부정적이다. “지금 다시 한다면 더 세련되고 매끄러울지 몰라도 그 나이에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까지 흉내 낼 순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최근 출연한 ‘신과함께’ 시리즈 속 염라대왕 역할이나 배우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사극 ‘관상’의 수양대군 역할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너지가 달라지고 있어도 변하지 않는 건 외모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정재는 일면 수긍하면서도 전부 인정할 수는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액션연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신체적인 기능저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털어놨다.

영화 ‘사바하’에서의 이정재.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나만의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배우 이정재를 만났다. 새 영화 ‘사바하’(제작 외유내강)의 개봉을 이틀 앞둔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여유로워지는 그는 새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덕분인지 인터뷰 내내 만면의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또렷한 목소리로 “감독을 믿고 갈 수밖에 없던 작품이고 그러길 잘했다”고 밝혔다.

‘사바하’는 신을 찾다 악과 마주한 이들의 이야기다. 신과 악, 종교와 믿음, 그 사이에 놓인 인간을 둘러싼 대담한 세계관을 펼친다. 과학적으론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믿음의 세계가 초현실적으로 그려지는데도, 이정재는 영화의 장르를 “오컬트가 아닌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규정했다.

“물론 영화에 의문의 존재인 ‘그것’이 등장하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물도 나온다. 그렇기에 오컬트가 아니라고 선을 긋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본다. 일면 탐정 수사물 같은 느낌도 있다.”

이정재는 영화에서 신흥 종교집단을 추적하는 박 목사 역할이다. 익숙히 본 성직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구형 BMW를 몰고, 영국산 명품 코트를 고집하는 모습이 얼핏 속물처럼 비치지만, 신과 믿음을 찾으려는 신념으로 뭉친 인물이다.

이를 통해 이정재는 오랜만에 극적인 캐릭터에서 물러나 인간미 짙은 인물을 완성한다. 최근 그가 찾던 스타일이기도 했다.

“3년 전 사극 ‘대립군’을 끝내고부터 현대물을 통해 일상적인 삶을 사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원하면서도 내가 과연 어울릴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따랐다. 그러다 (‘신과함께’의 역할인)염라를 만나면서 1년을 훌쩍 지나보냈다. 그 끝에서 ‘사바하’를 만났다.”

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박 목사를, 이정재는 “진짜를 찾기 위해 가짜를 찾아 나선 인물”로 받아들였다. 표현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건의 실체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인물이어서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목소리 높낮이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해 영화의 분위기에 녹아드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재현 감독과 대사를 나눠 읽고 이를 전부 녹음해 반복해 들으면서 자신의 역할에 적합한 말투를 찾아가는 과정도 거쳤다. 그는 “나만의 것을 고집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립군’ 촬영 땐 우리 회사 신인배우들이 배우는 연기학원에서 스무 번쯤 따로 레슨도 받았다. ‘태풍’(2005년)을 찍을 땐 한양대 최형인 교수님을 찾아가 배우기도 했고. 이번엔 장재현 감독이 그 역할을 해준 거다. 필요하다면 거쳐야 할 과정이다.”

배우 이정재.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믿음을 향한 의문? 어릴 때 나도…”

영화 주제가 워낙 뚜렷하다보니 이정재는 개봉을 앞두고 종교관이나 믿음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기독교 신자가 된 그는 “신의 존재에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돌이켰다.

“어릴 때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 누군가를 원망하게 되지 않나.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싶다. 종교를 갖게 된 건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다. 나에겐 아픈 형이 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병원도 많이 찾아다녔다. 그러다 종교를 갖게 됐고, 내가 유치원 다닐 무렵 형과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종교를 가진 입장에서 신흥종교나 악의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정재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대부분 종교인들이 ‘이런 영화 잘 만들었다’고 얘기할 것 같다”고 자신했다.

“우리 영화는 옳지 않은 믿음을 전파하는 종교인을 처단하는 이야기이지 않나. 심지어 기독교도인 박 목사와 불교 해안스님(진선규)이 손잡고 불법적인 종교단체를 찾아 정화시키는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두 종교의 화합이지 않나. 하하!”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먼저 평가해본다면, 이정재는 한 명의 배우가 서사에 녹아들 때 얼마만큼 힘을 낼 수 있는지 증명한다. 특히 영화 말미 그가 내레이션으로 읊는 이야기는 작품 전체를 감싸는 메시지로 울림을 남긴다.

개봉을 앞두고 조금 상기된 표정의 그는 한참 영화 이야기를 하다 인터뷰 말미에 이르러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이 ‘이정재한테 드라마 시놉시스를 줘도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드라마에 참여하고 하고 싶은 생각이 충분하니 제안을 해 달라”면서 웃었다. 최근 빠져있는 ‘SKY 캐슬’처럼 명품 드라마를 기다린다고도 덧붙였다.


● 이정재

▲ 1972년 3월15일생
▲ 1993 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
▲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로 스타덤
▲ 1995년 영화 ‘젊은 남자’ 주연, 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대종상 신인상
▲ 1999년 영화 ‘태양은 없다’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 2012년 영화 ‘도둑들’로 첫 1000만 흥행
▲ 2013년 ‘관상’,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 2015년 영화 ‘암살’
▲ 2017·2018 년 ‘신과함께’ 시리즈 염라대왕 역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