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스포츠의 룰과 그들만의 법

입력 2019-04-02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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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이원정. 사진제공|KOVO

2018~2019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상징적인 장면이 나왔다. 흥국생명과 도로공사 선수들이 사력을 다하며 엄청난 랠리가 오가던 4세트 24-22, 흥국생명의 우승까지 딱 한 점이 남은 때였다. 도로공사의 리시브가 흔들리자 세터 이원정이 패스페인트로 넘기는 순간 휘슬이 불었다. 네트터치 지적이 나왔다. 이제껏 뜨겁게 달궈놓은 분위기가 갑자기 식어버렸지만 경기는 끝났다. 도로공사 선수들은 담담히 판정을 받아들였다.

V리그 15번의 챔피언결정전 가운데 처음으로 심판판정으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 14차례의 여자부 챔피언결정 포인트는 공격 9차례, 블로킹 3차례, 공격범실 서브범실 각각 1차례였다. 권대진 부심은 한 시즌을 마감하는 순간에 용감하게도 네트터치를 지적했다. 그는 “명확한 네트터치였다. 어떤 심판이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휘슬을 불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발간하는 심판 지침서에 따르면 “메가 랠리같이 관중들이 좋아하는 장면이 이어지면 섣불리 경기를 끊지 말고 끝까지 진행하라”는 내용이 있다. 중요한 상황에서는 심판판정이 도드라지지 않아야 매끄러운 경기진행이 된다는 뜻이다. 물론 룰 위반이나 네트터치처럼 명백히 잘못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제 아무리 중요한 포인트라도 휘슬을 불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스포츠라는 게임을 유지하는 법칙이다.

스포츠의 룰이 세상의 법과 다른 것은 이 대목이다. 스포츠는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고 모든 구성원들은 룰대로 행동한다. 그렇게 못하면 페널티를 받는다는 것도 배우고 판정이 나오면 어떤 상황에서건 받아들인다. 스포츠맨십은 이 바탕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스포츠는 공평하고 공정한 게임이다.

요즘 법을 향한 대중이 시선이 좋지 못하다.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어왔던 법이 공평하게 작용하지 않았던 사실이 자주 밝혀지고 있다. 그동안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의 가치와 존중을 주장했지만 이들의 법은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시대와 상황의 논리로, 때로는 돈의 힘으로 법의 틈새를 빠져나가자 법의 가치는 차츰 떨어졌다. 이제는 누구도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촛불혁명 이후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이 공정과 공평이다. 스포츠는 공정과 공평이 바탕을 이루는 룰이 잘 지켜지고 누구나 그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장관후보 청문회를 보면서 새삼 세상의 법과 스포츠의 룰을 생각하게 됐다. 네트터치 이상의 반칙을 저지른 사람이 여럿 보였다. 이미 휘슬이 나왔을 사람들이 버티다 결국 스스로 물러나고 누구는 지명이 철회됐다. 이번 사례는 장관후보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소에도 법을 잘 지켜야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또 하나. 선거유세를 위해 축구장에 쳐들어간 사람들의 얘기다. 그 곳은 프로축구 선수들의 신성한 직장이다. 남의 집이나 일터에 갈 때는 주인에게 먼저 가도 되느냐 물어보고 그 곳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반대로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사람들이 자기들의 당사나 국회에 막무가내로 쳐들어갔다면 그들은 어떤 대응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질지 궁금하다. 법은 인간의 도리와 상식에 바탕을 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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