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성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 쓴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 추도사

입력 2019-04-1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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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가 12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다.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았던 고인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대한탁구협회 이유성 부회장은 추모의 글을 통해 고인이 한국 스포츠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과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대해 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례식이 12일부터 5일장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행된다. 조 회장의 장례는 한진그룹 회사장으로 치른다. 조문은 12일 정오부터 가능하며,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하갈동 신갈 선영이다. 조 회장은 8일 미국 LA에서 숙환으로 별세했지만, 시신을 국내로 운구하기 위한 관련 행정 절차를 진행하느라 장례가 늦춰졌다.

대한탁구협회장도 맡았던 고인을 기리며 대한탁구협회 이유성 부회장이 애끓는 추모의 글을 스포츠동아에 보내왔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의 코치로 참가해 여자부 단체전 금메달을 안겼던 주인공이다. 지난 14년 동안 가까운 곳에서 조양호 회장을 모셨던 그는 탁구인의 입장에서 스포츠를 향한 지원과 다양한 마음씀씀이에 감사했다.

회장님이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2008년 7월 28일이다. 2008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탁구인의 간절한 추대로 당시 공석이었던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임하셨다. 그전까지는 회장님께서 대한항공 탁구단과 배구단을 제외하고는 스포츠활동과 지원에 별 관심이 없으시지 않았나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취임 이후 회장님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고 존경심까지 갖게 됐다.

회장님은 무엇보다도 스포츠인을 전문가로 인정하셨다. 평소 “운동선수도 기회만 주면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공부하는 선수를 강조하셨고 현역은퇴 이후 진로도 생각하셨다. 의욕이 있는 선수출신에게는 마음껏 공부할 기회를 주셨다.

현정화 감독에게 유학을 권하며 자신의 모교인 미국 남가주대학교(USC)에 입학할 수 있도록 주선하셨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위해 흔쾌히 유학지원도 하셨다. 빙상의 이승훈 모태범에게도 영어공부를 위한 지원을 아끼시지 않았다. 복싱선수 출신의 이형석이 법학을 전공한다는 말을 듣고는 스포츠 전문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할 것을 내게 특별히 지시 하셨다. 회장님의 음덕에 힘입어 이형석은 이제 시험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선수들을 향한 살가운 애정도 많이 느꼈다.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은퇴하려던 김경아 선수를 한 번 더 붙잡아 2012런던올림픽까지 뛰게 하셨다. 나중에 현역 은퇴 뒤 그가 임신이 되지 않아 고민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내가 너무 운동을 오래 시켜서 그랬나”라며 자책하시면서 아무도 몰래 전문클리닉을 알아보고 많은 비용도 대주셨다. 그 배려 덕분에 태어난 아이는 이제 7살이 됐다.

2012런던올림픽에서 남자 탁구 선수들과 조양호 회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2런던올림픽 때다. 보름간 현지에 머무시며 대표선수들을 격려하시고 응원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탁구 남자단체 결승전 뒤 벌어진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따낸 선수들을 격려하시며 함께 사진을 찍고 좋아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2016리우올림픽 때는 기온이 낮아 대표선수들이 추워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즉시 대한항공을 통해 선수용 겨울점퍼를 공수한 일이 생각난다. 상파울루에서 리우까지는 우리 비행기가 없어 많은 운송비용이 들었는데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우리가 대신 내라고 하신 그런 세세한 마음씀씀이가 떠오른다.

회장님은 스포츠 과학에도 관심이 높으셨다. 탁구의 세계최강인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방안으로 과학적인 시스템을 권하셨다. 선수 영상분석 시스템과 과학적인 훈련시스템 구축에도 많은 지원을 하셨다. 나를 보실 때마다 국가대표 훈련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상대분석 등 과학적인 훈련이 되고 있는지 물으셨다. 과학적 선진 훈련시스템과 공부하는 선수육성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라며 2016년 4월 USC 스포츠센터 방문기회를 마련해주시면서 나를 포함한 탁구협회 임직원과 국가대표 감독이 견학하게 해주신 일도 있다.

또 미래에 한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도록 차세대 국가대표선수 육성시스템을 협회가 만들어 가야한다고 하셨다. 신유빈, 조대성 같은 유망주가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우수선수 육성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하셨다.

회장님은 남북단일팀 등 스포츠교류에도 적극적이셨다. 2018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단일팀 구성, 각종 오픈대회에서의 남북복식조 참가, 코리아오픈에 북한선수단 초청 등 남북스포츠교류 활성화에 탁구가 많은 역할을 하게 만드셨다. 아쉽게도 2020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는 결국 회장님의 마지막 업적이 되고 말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60만㎞ 이상을 누비며 결국 성사시킨 그 때와 같이 회장님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를 위해 직접 국제탁구연맹 회장을 만나 한국유치의 당위성을 설명했고 각국 협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앞장서신 결과, 한국탁구계의 염원이었던 세계선수권대회를 부산에서 유치하게 됐다.

이제 회장님은 떠나셨지만 2020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이전 어느 대회보다도 훌륭한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한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 선수들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셨던 회장님께서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신 것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회장님께 올림픽 금메달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2020세계탁구선수권대회 개최를 보시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 탁구인의 한사람으로서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 탁구인을 포함한 운동하는 사람들은 넉넉하고 편안했던 회장님의 그늘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모두의 진심을 담아 빌어본다.

탁구인 이유성(대한탁구협회 부회장)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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