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스승, 무명 제자들이 일군 반란…한국축구의 2019년 여름을 뜨겁게

입력 2019-06-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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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호 태극전사들이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FIFA 20세 이하(U-20)월드컵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패한 뒤 공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축구 역사상 길이 남을 하나의 사진이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힘찬 날갯짓이 세계 정상을 목전에 두고 아쉽게 꺾였다.

정정용 감독(50)이 이끄는 U-20대표팀은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 결승전에서 ‘동유럽 다크호스’ 우크라이나에 1-3 역전패,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전반 킥오프 2분 만에 김세윤(20·대전 시티즌)이 얻어낸 페널티킥(PK) 찬스를 이강인(18·발렌시아)이 침착하게 성공(전반 5분)시키며 리드를 잡았지만 전반 34분과 후반 8분 우크라이나 수프리아하에게 내리 두 골을 얻어맞아 역전을 허용했다.

정정용호는 동점골을 향해 한창 공세를 이어가던 후반 44분 치타이슈빌리에게 쐐기 골을 내줘 두 골차 패배를 당했다. 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포르투갈에 0-1로 패했던 한국은 유럽의 견고한 벽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충분히 위대한 여정이었다. 이미 새 역사를 쓴 대한민국 축구다. 한국 남자축구가 역대 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관 18세의 이강인이 역대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로 골든볼(MVP)을 품었으나 정정용호가 이토록 길게, 또 오랫동안 생존하리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대회를 앞두고 정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4강을 노래했고, 선수들은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강한 바람을 내비쳤어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적었다. 스타플레이어는 많지 않고 포르투갈~아르헨티나 등 강호들과 묶인 조별리그도 만만치 않았다. 어렵사리 토너먼트에 올라도 8강 정도가 한계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한국 U-20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모두의 집념과 열망, 그리고 오랜 노력이 만든 위대한 반란에서 ‘흙수저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정 감독은 대표적인 비주류 지도자다. 청구중·고교를 나와 경일대를 거친 그의 성인 커리어는 1992년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에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부상으로 1997년 조기 은퇴하기까지 6년 동안 이랜드의 중앙 수비수로 뛴 정 감독의 현역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지도자 경력도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K리그 고향 팀 대구FC 코치로 활동하다 대한축구협회의 전임지도자의 길에 2006년 입문해 묵묵히 연령별 대표팀을 맡아 후배들의 성장을 도왔다.

그런데 축구계에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유명 선수가 반드시 좋은 지도자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정 감독이 그랬다. 묵묵히 노력했고 자기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지금에 이르렀다. 명지대와 한양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한 모습이 대표적이다.

완벽한 상대 분석, 실전에서의 탁월한 지략은 놀라울 정도다. 매 경기 바뀌는 팔색조 전략·전술은 U-20 대표팀이 36년 만에 U-20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루고 결승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됐다.

지도 스타일도 편안하다. 사회는 ‘수평 리더십’을 강조하나 이를 실천하는 조직은 썩 많지 않다. 하지만 U-20 대표팀은 달랐다. 협회 관계자는 “구수한 사투리의 ‘동네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라고 표현한다. 선수들이 “신나게 운동장에서 논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 배경이다.

마음껏 춤을 추고 뛰어 놀았던 U-20 대표팀의 2019년 초여름은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역사로 남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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