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캐스팅의 이면 中] 조연급 출연 빌미로 금전 요구…배역은 고작 ‘지나가는 행인’

입력 2019-06-2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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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0만 원에 ‘소속’ 변칙 계약
B급 정보에 비중 없는 배역뿐
기획사의 금전 요구 경계해야


“아이들의 꿈이 ‘볼모’가 되는 게 정당한가요?” 최근 아역 연기자 지망생 부모들을 상대로 한 사기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작품 제작비로 거액을 빌리고,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등 사례도 가지각색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비슷한 사건들이 문제됐던 2010년 초반과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스포츠동아가 세 차례에 걸쳐 이런 현실을 고발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아역 연기자 지망생과 관련 일부 기획사 사이에는 ‘소속’으로 불리는 독특한 계약 방식이 있다. 이는 일반 연예기획사가 말하는 전속계약과는 다르다. 기획사측은 이를 두고 “다른 에이전시 일도 하면서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획사에 ‘소속비’를 낸 아역 지망생 부모들은 “허황된 변칙 계약”이라고 주장한다.


● “월 30만원으로 출연에 오디션까지?”


작년 말 아역 연기자 지망생의 어머니 A씨는 아역 에이전시인 B기획사로부터 ‘소속’ 제안을 받았다. “매달 30만 원의 소속비를 내면 드라마 출연 기회와 각종 오디션 정보를 제공해주겠다”는 말에 A씨는 아이를 소속으로 등록시켰다. 하지만 B사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적어도 조연급 이상”이라던 드라마 배역은 ‘지나가는 행인’ 역에 그쳤다. 오디션 정보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다. A씨는 “한참 후에야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등록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흔히들 소속 활동을 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아역 지망생 어머니 C씨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C씨는 “아이를 6∼7군데 기획사에 소속 신분으로 이름을 올린 경우도 봤다”면서도 “‘문어발 소속’의 효과를 본 부모는 극소수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많게는 200만 원의 소속비를 쓰고도 기획사 중 단 한 곳으로부터도 연락을 받지 못한 부모들이 꽤 있다”고 덧붙였다.


● “출연 빌미로 돈 요구? 불법!”

아역 지망생 부모들은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절실한 까닭에 일부 기획사의 ‘소속’ 제안에 쉽게 흔들린다. 아역 연기자가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이고, 그나마도 유명 아역 연기자들이 우선적으로 캐스팅돼 작은 배역도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일부 기획사들은 좀처럼 작품 활동 기회를 잡기 힘든 지망생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해 소속비를 받았다. A씨도 “출연 기회와 오디션 정보를 준다 하니 월 30만 원이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연예계는 무조건 돈을 내야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란 편견도 부모들을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다. 이는 교육비나 전속계약비 명목으로 돈을 챙긴 일부 기획사들의 행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캐스팅이나 오디션 정보 등을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일부 기획사의 행태는 불법행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도입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계약서는 교육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은 원칙적으로 매니지먼트사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학원형 기획사’의 난립도 심각하다. 매니지먼트 역할과 연기 지도를 동시에 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소속비 문화’가 더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획사들의 영업 방식 역시 명백한 불법이다.

전국출연자노동조합 배윤환 사무국장은 “드라마 출연이나 트레이닝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곳은 불법업체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이 같은 계약 조건을 내건 기획사나 에이전시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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