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녹색 왕조’ 구축한 전(前) 단장의 메시지 “끊임없이 소통하라”

입력 2019-08-07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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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이철근 전 단장(왼쪽). 스포츠동아DB

축구는 공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스포츠다. 경기장엔 선수들이 뛰고, 코칭스태프는 이 선수들을 관리하며, 구단은 지도자를 평가한다. 선수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유능한 감독의 능력에도 한계는 있다. 안목 있는 행정가와 호흡을 맞출 때 선수도, 감독도 더욱 빛이 난다. 그만큼 프런트의 능력이 중요하다.

구단의 행정 수장이 자주 바뀌는 게 프로축구 K리그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구단도 그렇지만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도·시민구단의 경우, 구단주가 바뀌면 단장(또는 사장)도 교체되는 악순환은 고질에 가깝다. 도·시민구단 임원의 평균 재임기간이 2.16년에 불과한 통계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업무 파악하고 뭔가 해보려고 하면 2년은 후딱 지나간다. 자리 보존을 위해 장기 플랜보다는 단기 성적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K리그에도 성공한 행정가는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녹색 왕조’를 구축한 이철근 전(前) 전북 현대 단장(67)이다. 2017년 2월 은퇴한 그가 최근 자전 에세이 ‘서류 봉투 속 축구공을 꺼낸 남자’를 출간했다. 경기인 출신이 아닌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어느 날 운명처럼 축구와 인연을 맺고, K리그의 인정받는 행정가로 자리매김한 20여 년의 세월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전북에 있는 동안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2회 우승, K리그 4회 우승 등 빛나는 업적을 남기며 지방의 인기 없는 구단을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으로 성장시킨 과정들은 흥미롭다.

이 책은 묵직한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바로 소통과 장기 플랜의 중요성이다. 아무 연고가 없던 전주에 내려간 그는 머리보다는 발로 뛰며 지역민과 소통했다. “프로 구단은 지역과 함께 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은 책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또 구단 직원들과도 끊임없이 소통했다. 단순히 경기만 준비하는 축구단이 아니라 비전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결재권을 가진 현대자동차 임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설득했던 장면도 인상적이다. 선수단과의 교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감독보다 축구를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수단 관리에 절대 개입하지 않았다는 그만의 철칙은 눈길을 끈다.

눈앞의 성과와 함께 백년대계도 빼놓지 않았다. 5년 단위의 플랜을 짜면서 팀을 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클럽하우스도 장기 플랜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후원의 집을 선정해 상생 모델을 만들고, 산간벽지의 아이들을 초청해 나눔을 실천한 건 미래를 내다본 한 수였다. 특히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충성 팬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장면들은 후배들에겐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하다.

K리그가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해선 뛰어난 선수와 지도자 말고도 훌륭한 행정가가 필요하다. 안목과 소통, 그리고 추진력을 갖춘 행정가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전 단장은 귀감이 될 만하다. 현재 축구 행정가라면, 혹은 그 직업을 꿈꾼다면 이 책을 권해 드린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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