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르포] 일본의 심장부에 울려퍼진 BTS·트와이스

입력 2019-08-12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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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서도 일본의 한류 열기는 여전하다.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대형 쇼핑몰에 문을 연 그룹 갓세븐의 팝업스토어, 갓세븐의 사진과 굿즈로 가득한 내부 모습. 도쿄(일본)|백솔미 기자 bsm@donga.com

■ 격앙된 한·일 정치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케이팝의 힘’

日 언론들 노 재팬 연일 중점보도 불구
도쿄 중심부 K팝스토어 등 인산인해
日 젊은이들 “한류 선택은 개인의 몫”


6일 오후 일본 도쿄의 최대 번화가인 시부야의 한 대형 쇼핑몰. 한국 남성그룹 갓세븐의 팝업 스토어가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7월30일 문을 연 이 곳은 갓세븐의 사진과 다양한 ‘굿즈’(머천다이징 상품)로 가득했다. 주로 10대와 20대 등 젊은 여성들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북적거렸다. 12일까지 운영되는 이곳은 현재 케이팝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관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루 전 도쿄로 날아오기 전 마음은 무거웠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에 국내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 ‘노 재팬(No Japan)’ 캠페인이 확산하는 심상찮은 시국 아닌가. 때가 때인 만큼 일본으로 휴가를 떠난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왜 이런 때 굳이 일본을 가려 하느냐는 의심과 자칫 신변에 대한 걱정을 담은 시선이 교차하는 듯했다. 외교부는 마침 혐한 집회나 시위로부터 신변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당부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한류가 최악의 상황으로 얼어붙었을 때였던 2011년 신주쿠 등 도쿄 도심에서 일부 극우단체가 봉고차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격렬하게 혐한을 외치던 모습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의심과 걱정을 애써 떨쳐내며 5일 오후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인근 초밥집을 찾았다. 일본어로 된 메뉴 사이로 한글판이 있느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웃는 얼굴로 흔쾌히 한글로 된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거리에선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 등 귀에 익은 케이팝 가수들의 노래가 간간이 흘러 나왔다. 한글로 제품을 설명해놓은 다양한 상점의 진열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최근 도쿄의 풍경은 현재 한국과 일본의 급격히 냉각된 정치경제적 갈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다. 현지 언론들이 연일 한일관계에 관한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과도 다른 분위기였다. 언론은 현지 최대 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한국인들의 ‘노 재팬’ 캠페인 등 반일 움직임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각 지상파 방송사의 오전 정보프로그램들도 관련 내용을 잇따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전과 큰 변화 없이 ‘예스 코리아(YES KOREA)’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반감이 확산하기는커녕 여전히 우호적인 시선이 드러났다.

그룹 방탄소년단(위쪽)-걸그룹 트와이스. 스포츠동아DB


시부야는 물론 하라주쿠의 한국 화장품 브랜드 상점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케이팝 가수들의 사진이나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한류 전문숍에는 여성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등 케이팝 가수들을 모델로 내세운 브랜드는 모객 행위를 위해 세워놓은 등신대를 거리에 전시해 놓고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형 할인마트인 돈키호테는 트와이스 등의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틀어놓았다.

각 상점을 찾는 이들은 대체로 10대부터 30대까지 비교적 젊은 여성층이 많았다. 과거 한국드라마에 40∼50대 여성들이 열광했던 것과 달리 현재 케이팝 등 한류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이 비교적 젊은 세대에게로 옮아갔음을 보여줬다.

이는 이들 연령층에게 양국의 문화교류가 정치적 상황과는 전혀 별개의 것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20대 여성은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지만, 한류문화에 대한 관심은 개인적인 호불호의 문제”라고 말했다. 갓세븐의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30대 여성 니카이도 코우요 씨는 “양국 관계의 악화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억지로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케이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콘텐츠가 오랜 시간 기반을 다져온 인기를 토대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양국 간 문화교류가 두 나라와 그 시민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넓혀가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일본 도쿄의 거리와 곳곳의 상점들은 역설하고 있었다.

도쿄(일본)|백솔미 기자 bs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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