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 기자의 투얼로지] 부끄러운 역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입력 2019-08-2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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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사 아픔의 현장…서울 다크 투어리즘 코스

“휴양과 관광을 위한 일반 여행과 달리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난 곳을 찾아가 체험하면서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 나오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에 대한 정의다. 일본의 경제도발 이후 요즘 일제강점기 흔적을 돌아보며 역사의 교훈을 찾아보는 다크 투어리즘이 주목받고 있다. 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500년 도읍지였던 서울에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남긴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곳들이 많다. 서울관광재단이 선정한 다크 투어리즘 코스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아픈 역사를 돌이키며 오늘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국치의 길 - 을사늑약 치욕 되새겨
침탈의 길 - 경제침략의 역사 교훈
고종의 길 - 대한제국의 꿈과 조우



○한일병합의 현장…남산 국치의 길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남산 아래 충무로 일대에 모여 살았다.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우선 한국통감관저 터가 있다. 1910년 데라우치 통감과 총리대신 이완용이 이곳에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지금은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조성됐다. 이곳에는 또한 ‘거꾸로 세운 동상’이 있다.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세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세웠는데, 해방 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워 당시의 치욕을 되새기고 있다.

남산에는 일본 신사의 흔적도 많다. 리라학교에는 노기신사 터가, 숭의여대에는 경성신사 터가 남아있다. 노기신사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키를 모시는 신사다. 경성신사는 일본 이세신궁에서 신체 일부를 가져와 세운 신사다. 숭의학교는 당시 신사 참배에 반대해 자진 폐교했다가 해방 이후 1953년 경성신사 터에 다시 학교를 세웠다.

케이블카 탑승장 근처에는 1910년 일본인을 위해 만든 한양공원의 비석이 있다. 이곳을 지나면 서울교육청 과학전시관 계단이 나온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엔딩신 덕분에 ‘삼순이 계단’으로도 불리지만, 원래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 계단의 일부였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남산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긴 뒤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로 조성했던 신사다.


○한반도 수탈의 현장, 경제 침탈의 길

서울 보신각 남쪽 광교를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부를만한 대표적인 금융가다. 일제는 1911년 조선은행법을 만들고, 이듬해 르네상스 양식의 3층 건물을 지어 조선은행을 열었다. 지금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다. 화폐박물관과 길을 마주한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에는 조선저축은행이 있었다. 신한은행 광교 영업부 자리는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는 민족계 은행인 동일은행 등도 있었다. 1908년 일제가 우리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려고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 위치에 있었다. 지금 그 앞에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했던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있다.




○아관파천과 을사늑약의 현장, 고종의 길


정동 일대 120m의 짧은 구간이다. 명성왕후가 일제에게 시해되자 고종이 궁녀들이 타는 가마에 몸을 숨겨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한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2011년 고종이 경복궁을 빠져나온 경로를 복원했다. 길 끝에 구 러시아 공사관이 있다. 6.25 전쟁 때 파괴되어 첨탑과 지하 통로만 남았다. 현재는 안전문제로 밖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덕수궁 중명전은 서양식 건축물로 원래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다가 덕수궁에 불이 난 후 고종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에는 환구단이 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해 하늘에 제를 올린 곳이다.



○역사박물관·서대문 형무소·망우리공원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경희궁 앞 본관을 비롯해 경교장, 돈의문박물관, 경희궁,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등 분관으로 이루어졌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7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하여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해방 후에는 서울 구치소로 역사를 이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논의되기도 했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사관으로 복원했다.

망우리공원은 예전 1933년부터 운영하던 망우리 공동묘지가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곳이다. 숲과 산책로를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안창호, 한용운, 지석영, 이중섭, 박인환 등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인물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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