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의 피버피치] ‘집 없는’ 나라들도 있는데…북한은 왜 그랬을까?

입력 2019-10-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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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김일성경기장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3차전 북한-한국.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의 또 한 차례 라운드가 마무리됐다. 팀당 3~4경기씩 소화한 가운데 서서히 최종예선 진출국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각 조 순위 표를 살피고 있으면 유독 눈에 띄는 국가들이 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이다. 어지러운 안팎 정세에 휘말린 두 나라는 홈경기를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내전을 겪은 시리아는 얼마 전 터키의 침공을 받았다. 으르렁대던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과 쿠르드족은 임시 협정을 맺고 영토를 공격한 터키에 맞서겠다는 의지다. 뒤늦게 미국이 터키에 ‘공격 중지’를 외치지만 사태가 쉬이 끝날 조짐이 아니다.

이란의 동쪽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도 19세기부터 외세의 끊임없는 침입을 받았고,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여전히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탈레반이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고 수도 카불에선 잊을 만 하면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현실이 이럴진대 국제대회는 물론, 단판경기조차 열기 어렵다. 중국·필리핀·몰디브·괌과 A조에 속한 시리아는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지키고 있는데, 10일·15일 두 차례 안방경기를 모두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소화했다.

카타르·오만·인도·방글라데시와 E조에 편성된 아프가니스탄도 사정이 낫지 않다. 1승2패로 조 3위에 랭크된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두샨베를 안방으로 삼고 있다. 9월 홈경기를 이곳에서 치렀고, 다음달 14일 인도전도 두샨베에서 펼친다.

오래 전부터 서방 세계와 자주 부딪히며 불량국가 이미지가 강하고, 축구에서도 강호에 속하지 않은 탓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은 늘 고통을 겪는 국민을 위해 슬프고 절박한 도전을 계속하는 셈이다.

사진출처|AFC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이렇듯 ‘집 없는’ 나라들이 혀를 찰만 한, 기막힌 일이 한반도에서 펼쳐졌다. 한국은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과 H조 원정 3차전을 치렀다. 무득점 무승부로 3연승에 실패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아쉬움이 짙게 남은 일정이었다.

태극전사들은 기괴한 경험을 했다. 응원단은 물론이고 취재진도 함께 할 수 없었다. 인터넷은 물론, TV생중계도 이뤄지지 않아 철저히 고립된 2박3일을 보냈다.

여기에 이날 경기는 사상 초유의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물론 ‘관중이 없는’ 경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이나 관중소요, 정치적 행위 등의 이유로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각 대륙연맹의 징계에 따라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경우는 꽤 있다.

그런데 북한은 스스로 무관중을 택했다. 홈 어드밴티지를 포기한 정확한 배경과 이유도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은 경기 전날(14일) 매니저 미팅에선 “4만 명 정도 찾을 것 같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무관중 게임은 이미 오래전에 계획된 것’일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대한 명백한 기만행위다.

전 세계 언론들은 남북대결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더비‘로 포장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자신들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남의 집에서 힘껏 싸우는 나라들을 위해서라도 북한은 정상적이고 이성적으로 한국 손님을 맞이했어야 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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