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 명예회장, ‘전자·화학의 강국’ 기틀 다진 혁신 전도사

입력 2019-12-16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LG그룹 2대 회장을 역임했다. 사진은 구 명예회장이 1982년 미국 현지생산법인(GSAI)에서 생산된 제1호 컬러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제공|LG그룹

■ 구자경 LG 명예회장, 94세 일기로 타계

재임 25년 만에 LG 매출 1150배
컬러TV 등 국내최초 제품 선보여
연구소 70여개 설립 R&D에 매진
LG트윈스 야구단 창단도 이끌어


대한민국의 화학·전자 산업 중흥을 이끈 상남(上南)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스물다섯이던 1950년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한 뒤 기업인의 길을 걸은 구 명예회장은 ‘참 경영인’과 ‘혁신 전도사’로 불렸다. 1970년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한 뒤 25년 동안 ‘도전과 혁신’을 주도하며 매출을 260억 원에서 30조 원대로 약 1150배 성장시켰다.

1995년 회장 이취임식서 이임사하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모습. 사진제공|LG그룹


구 명예회장은 특히 ‘강토소국 기술대국’ 신념 아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화학과 전자 산업강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제품을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보자”며 재임 기간 중앙연구소 등 70여 개 연구소를 설립해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또 19인치 컬러TV와 공냉식 에어컨, 전자식 VCR, 슬림형 냉장고 등 ‘국내 최초’ 타이틀이 달린 제품을 잇달아 선보였다.

1999년 4월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사진제공|LG그룹


구 명예회장은 외형적 성장 뿐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혁신가’이기도 했다. 1970년 2월 그룹 모체 기업인 락희화학을 민간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기업공개해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이어 금성사도 전자 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하면서 주력 기업을 모두 공개한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또 재임 동안에만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하는 등 기업의 활동 지평을 세계로 확장시켰다. 1988년에는 21세기 세계 초우량기업 도약을 목표로 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방향을 발표하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과 책임경영’을 도입했다. 구 명예회장은 LG와 고락을 함께 한 지 45년 만인 1995년 2월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특히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또 57년 동안 이어온 구·허 양가의 동업관계도 한 치 잡음 없이 마무리해 재계의 귀감이 됐다.
한편, 구 명예회장은 회장 재임 시절인 1990년 3월 MBC청룡을 인수해 LG그룹 야구단 LG트윈스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LG트윈스는 창단 첫 해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김명근 기자 dionys@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