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10일(한국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꿈의 무대’를 밟은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와 배우 최우식·장혜진·이정은·박명훈·봉준호 감독·박소담·이선균·조여정·송강호(오른쪽부터)가 사전 레드카펫 행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또 다른 주역인 한진원 작가, 양준모 편집감독, 이하준 미술감독(왼쪽부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기생충’ 4관왕 이끈 영광의 얼굴
송강호, 봉준호 감독 최고 동반자
최우식·박소담·장혜진 등 재발견
각본상 한진원 작가 세계가 인정
최우식·박소담·장혜진 등 재발견
각본상 한진원 작가 세계가 인정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우리 모든 예술가(스태프)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기생충’의 ‘오스카 영광의 순간’에는 봉준호 감독만 있었던 게 아니다. 각본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 그리고 봉 감독의 치밀하고 섬세한 대사를 최고의 앙상블로 표현한 송강호와 조여정 등 배우들의 힘도 컸다. 또 제작사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이하준 미술감독(미술상), 양준모 편집감독(편집상) 등도 한국영화사를 새롭게 쓴 주역들로 꼽힌다.
● 봉준호의 동반자 “송강호”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가 없었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을 일이다.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봉 감독은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지 못할 영화였다”면서 주연 송강호에게 공을 돌렸다. 시상식이 끝나고 봉 감독이 무릎을 꿇고 송강호에게 트로피를 전달하는 카메라 포즈가 아직도 회자될 정도다.
송강호는 영화 속 기택 역을 디테일하게 연기한 덕분에 지난해 12월 미국 LA비평가협회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미국 영화배우조합(SAG)으로부터는 다른 출연 배우들과 함께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거머쥐었다. SAG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었다. 앞서 지난해 8월 제72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로 ‘엑설런스 어워드’를 받기도 했다.
송강호는 10일(한국시간) 아카데미 수상 이후인 이날 오후 LA의 더 런던 웨스트 호텔에서 봉 감독을 비롯한 주역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봉 감독의 20년 동안 그의 리얼리즘 변화를 목격했다”면서 ‘기생충’이 “그 완성 지점에 와 있다. 시대에 대한 탐구, 삶에 대한 성찰이 발전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조여정도 빼놓을 수 없다. 부잣집 박 사장의 아내 역을 연기한 그는 빼어낸 연기로 미국 뉴멕스코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날 생일이기도 했던 그는 “훌륭한 영화로 아카데미에 온 것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었다”면서 감격해 했다. 이에 송강호는 “내일이 (내)생일”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최우식, 박소담을 비롯해 이정은은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날 봉 감독에 따르면 최우식은 북미지역에서 활동하는 교포 감독의 영화 출연을 논의 중이다. 최우식은 극중 대사(계획에 없던 건데)를 인용해 “계획하지 못했던 큰 이벤트에 너무 행복하다”며 웃었다.
송강호의 아내 역으로 출연한 장혜진과 이정은의 남편 역 박명훈 역시 관객에게는 아직 낯설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주역의 자리에 우뚝 섰다. 박명훈은 이날 “기적 같은 하루”를 보냈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한진원 작가와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후 프레스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기생충팀’으로 불린 또 다른 주역
연출자와 배우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힘, 바로 스태프이다. ‘기생충’ 역시 스태프의 노력으로 완성됐고, 결실은 봉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한진원 작가의 각본상 수상, 이하준 미술감독과 조원우 세트디자이너의 미술상 및 양진모 편집감독의 편집상 후보로 맺어졌다. 이들은 이미 각 부문별 미국 조합이 주는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진원 작가는 봉 감독의 전작 ‘옥자’의 연출팀에 참여한 뒤 두 번째 공동작업으로 기쁨을 안았다. 그는 용인대 영화영상학과를 나와 2012년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 소품팀 이후 영화 ‘판도라’와 ‘헬머니’ 연출팀에서 일했다. 한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료조사하면서 보고 느낀 것, 봉 감독과 회의를 하며 나온 이야기가 스파크처럼 나왔다”고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
이하준·조원우 콤비는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현실적 아픔을 풍자의 코미디와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로 버무린 영화를 뒷받침한 주역이다. 부잣집 가족의 세련된 저택과 가난한 가족의 반지하방의 살림살이를 미술과 세트로 표현하며 영화의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양진모 편집감독 역시 1월 미국 영화편집협회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영화의 장면 장면을 막힘없이 연결하며 하나의 명징한 스토리를 구현하는 힘이 편집에 있다면 양 감독은 감각적인 실력으로 이를 입증했다.
이는 곧 한국영화의 힘이기도 하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한국영화가 정말 이 정도까지 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 ‘기생충’의 주역들은 조만간 귀국해 한국 관객 앞에 나설 예정이다. 봉 감독은 “일정을 조율 중이고 상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