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준.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https://dimg.donga.com/wps/SPORTS/IMAGE/2020/05/28/101259158.2.jpg)
안병준.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과 북한, 일본 3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정체성이 당시처럼 절절하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일본에선 외국인으로 분류되고, 한국에선 일본인으로 취급받으면서 축구선수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 그런 까닭에 축구는 특별했다. 또 축구는 인생의 돌파구였다. 일본 J리그 입단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의 나라 K리그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재일동포 중 처음으로 K리그 구단에 문을 두드린 선수는 박강조다. 뜨거운 관심 속에 2000년 성남 일화(현 성남FC)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프로축구연맹은 ‘재외국민 2세는 국내선수로 간주한다’는 규정을 새롭게 만들었다. 국적이 한국인 그는 태극마크도 달았다. 하지만 문화 차이를 극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3시즌 동안 69경기 1골·3도움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북한 국적 선수가 K리그에 등록된 건 2001년 량규사다. 북한 국적으로 한국에서 취업한 사례가 없던 탓에 정부의 방문 승인과 방문증명서 발급만으로 울산 현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연맹도 그를 외국인 선수가 아닌 재외국민 2세로 보고 등록을 인정했다. 그러나 입단 소식만 요란했을 뿐이었다. 정작 1군 무대에는 오르지 못한 채 2군 리그 5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이름을 제대로 알린 케이스는 안영학과 정대세다. J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북한대표에 발탁됐던 안영학은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면서 크게 주목 받았다. 부산(2006~2007년)과 수원 삼성(2008~2009년)에서 4시즌을 뛰는 동안 K리그 올스타에도 뽑힐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재일동포 3세로 한국 국적 아버지와 조선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대세는 3번째 북한대표 출신 K리거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국가 연주 중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정대세는 J리그와 독일 무대(FC쾰른)를 거쳐 2013년 수원에 입단해 3시즌 동안 23골·8도움으로 활약했다.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재일동포 3세 안병준(30)이다. 2018년 12월 K리그2(2부) 수원FC에 입단한 그는 4번째 북한대표 출신 K리거다. U-17과 U-23 대표팀을 거친 뒤 2011년 A매치에 데뷔했고, 2017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북한대표로 출전했다. A매치 출전은 9경기다. 2013년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통해 프로 무대를 밟은 뒤 J리그에서만 6시즌 동안 101경기 20골을 넣은 베테랑이다.
요즘 그가 뜨고 있다. 지난해 무릎 부상으로 후반기를 뛰지 못해 8골(17경기)에 그쳤던 그는 이번 시즌 제대로 물이 올랐다. 대전하나시티즌과 개막전에서 골을 넣고도 팀 패배로 빛이 바랬지만 무회전 프리킥만은 인상적이었다. 이후 경기마다 상대 골 망을 갈라 4경기 연속 골이자 5호골을 기록했다. 대전하나시티즌의 안드레와 득점 공동 선두다. 3라운드 MVP에도 뽑혔다. 안병준의 활약 덕분에 수원FC는 최근 3연승으로 단독 2위에 올랐다.
안병준은 적극적인 움직임과 공중볼 경합이 돋보인다. 수원FC 김도균 감독은 “개인 능력이 출중하고 팀플레이에도 적극적”이라며 칭찬했다. 그라운드 밖 평판도 좋다. 수원FC 홍보팀 안찬호 대리는 “우리말로 의사소통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잘 한다. 한국 선수들과 잘 지내고, 일본 출신 마사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전했다. 재일동포 출신인 아내와 자녀들은 모두 한국 국적이다. 안 대리는 “북한대표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다. 할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어서 우리 정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김호곤 단장도 “아주 성실한 선수”라고 촌평했다.
“소속팀 승격이 목표”라는 안병준이 정대세나 안영학을 뛰어 넘는 북한 대표 출신 K리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