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와인투어’가 소환한 반상회 안내방송과 막대풍선 응원의 추억

입력 2020-08-13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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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맷 윌리엄스 감독이 KBO리그에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는 그가 대한민국을 떠난 뒤 알게 되겠지만, 성적을 떠나 ‘와인투어’는 많은 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듯하다.

현역시절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감독은 새로운 리그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신고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처음 만나는 상대팀 감독을 찾아가 정중히 인사하고 와인을 선물하는 장면은 신선했다. 빈손으로 손님을 돌려보낼 수 없는 우리의 정서상, 국내 감독들도 나름대로 답례의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화제를 만들었다. 지역특산품인 감와인에 수원왕갈비, 인삼주와 소곡주, 홍삼, 어묵, 사진 등 답례품도 다양했다.

12일 잠실 LG 트윈스전을 앞두고 윌리엄스 감독에게 ‘메이저리그에도 이번 와인투어와 비슷한 인사문화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선 이런 저런 팀에서 지내면서 대부분 서로를 잘 안다. 이곳에선 (내가) 외지인이어서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좋은 제스처로 생각했는데, 흥미롭게 이어졌다”고 답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이날 류중일 LG 감독과 1985년 한미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추억의 사진을 보고 즐거워했다. “재미있고 신기했다”는 그는 취재진에게 당시의 기억도 들려줬다. 서울 이태원에서 쇼핑을 하다 민방위훈련에 걸리자 서둘러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흥미로웠다.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데, 사람들은 대피하고 차들은 일제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은 겁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군인들이 노려보는 표정이었다”는 대목에선 웃음마저 터졌다. 민방위훈련 때 교통통제를 하는 군복 차림의 훈련관이 군인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의 발언을 들으면서 1998년부터 KBO리그에 등장한 초창기 외국인선수들의 많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서로를 몰랐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던 때다. 당시 이들 중 몇몇에게 한국생활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던 선수에게서 나왔다. 반상회 안내방송이 무서웠다고 답했다.

구단이 제공해준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그는 쉬는 날 집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반상회를 안내하는 방송이었는데, 사정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 천장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혹시 전쟁이라도 난 것인지 크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부랴부랴 통역에게 전화해 방송의 정체를 알고 난 뒤에는 안심했지만, 잊지 못할 에피소드라고 했다.

또 다른 대답들 중에는 막대풍선도 있다. 어느 선수의 아내는 경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긴 막대를 함께 두드리는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막대풍선 응원이 KBO리그에서 막 자리 잡을 무렵이었는데, 수많은 관중이 두드리는 막대풍선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어린아이가 울었다고 했다. 지금 KBO리그에서 뛰는 외국인선수들은 무엇이 가장 인상적일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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