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콜 칼훈이 소환한 33년 전 유승안의 헤딩 사건

입력 2020-08-2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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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안 전 경찰청 감독(왼쪽). 스포츠동아DB

25일(한국시간)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이 가장 많이 본 동영상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콜 칼훈(33)의 헤딩이었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 도중 나온 해프닝이었다. 2-3으로 뒤진 5회말 애리조나 공격에서 칼훈이 진귀한 장면을 연출했다. 케텔 마르테의 좌익수 플라이 때였다. 2루까지 뛰었던 1루주자 칼훈은 무사히 귀루했지만, 그 과정에서 콜로라도 좌익수 라이멜 타피아의 1루 송구가 뒤로 빠지자 2루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콜로라도 포수 빅터 월터스가 공을 일찍 잡으면서 런다운에 걸린 칼훈은 2루로 향하던 도중 월터스의 송구에 의도적으로 머리를 갖다 댔다. 2루심은 즉각 수비방해와 칼훈의 아웃을 선언했다.

이 장면은 33년 전 KBO리그에서 나온 유승안 전 경찰청 감독의 헤딩 사건을 소환했다. 1987년 9월 9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빙그레 이글스-MBC 청룡전에서다. 빙그레 유승안은 1-2로 뒤진 9회초 1사 후 좌중간으로 홈런성 장타를 날렸다. 타구는 펜스 상단을 맞았다. 여유를 부리다 간신히 2루에 도착한 유승안이 허리를 구부린 채 한숨을 내쉬는데, MBC의 모든 중계플레이를 담당하는 김재박의 송구가 유승안을 향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공이 헬멧을 맞고 1루 덕아웃 쪽으로 방향을 틀자 3루까지 내달렸다.

요약하면 ‘유승안의 수비방해’와 ‘김재박의 송구실책’ 중 하나였다. 상황이 복잡했던 것은 헤딩 순간 유승안의 위치였다. 2루를 밟고 있었다. MBC 유백만 감독대행은 “수비방해로 주자는 아웃”이라고 주장했다. 빙그레 배성서 감독은 “송구실책”이라고 외쳤다. 헤딩은 절묘했다. 칼훈처럼 불순한 의도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고개만 살짝 돌려 송구의 방향만 바꿔놓았다. 당시 MBC 1루수 김상훈은 “고의로 그랬죠?”라며 이규석 1루심에게 물었다. 심판과 선수의 경기 도중 대화는 금지돼 있었지만, 심판은 유승안에게 “고의로 그랬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것도 기술인데, 뭐 어때요”였다.

심판들은 합의를 거쳐 유승안을 2루로 돌려보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판정이었지만, 결론은 오심이었다. KBO는 다음날 4명의 심판에게 벌금 4만원씩을 부과했다. 심판생활 18년간 2214경기에 출장했고, 지금도 KBO리그에서 가장 정확한 판정을 내린 심판으로 회자되는 이 심판이 받은 유일한 벌금이었다. 몇 년 뒤 그는 “지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판정이었다. 다른 심판들도 그러자고 해서 따르기는 했지만, 오심이었다”고 인정했다.

1989시즌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을 상대로 유일한 만루홈런을 때렸던 유승안은 프로야구 초창기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은 해프닝을 만들었다. 1984년 5월 5일 해태 방수원, 1988년 4월 17일 빙그레 이동석이 노히트노런을 달성했을 때 마스크를 썼던 유능한 포수였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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