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직도 왕진이 있냐고요?” 동네주치의 추혜인 원장의 명랑 뭉클 에세이

입력 2020-09-20 11: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추혜인 저 | 심플라이프)


- 여성주의 의료 실천가, 동네 주치의의 명랑 뭉클 에세이
- 여자, 페미니스트, 동네 의사로 일궈온 20년의 아름다운 여정

잘나가던 서울대 의대생이 대학병원을 거부하고 동네 의사가 되어 오르막길을 오르고, 후미진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누빈다. 기저귀를 갈고 귀지를 파고 발톱을 깎는다.

그에겐 남다른 꿈이 있었다. 꾸준히 여성주의를 공부하며 언젠가 여성주의를 실현할 병원, 의료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2012년 지인과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의료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바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그렇게 살림의원은 현재 조합원 3200세대가 넘는 어엿한 지역 거점 병원으로 우뚝 섰다.

‘왕진’이란 단어가 낯설고 아직도 왕진이 있냐고 반문하는 시대, 그는 일주일에 한번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를 찾아 왕진 가방을 챙겨 나선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환경과 가족 상황, 가구 배치, 햇볕이 들어오는지도 살핀다. 아프거나 나이 들어서도 인간적 품위와 자아를 잃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살핀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기꺼이 달려가 증언해주고, 환자가 원하는 곳으로 왕진을 가는 사람, 은평구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건강지킴 고리 살림의원의 추혜인 원장이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국내 최초 여성주의 병원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의원)의 의사 추혜인 원장의 에세이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이 출간됐다. 건축학도를 꿈꾸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증언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진로를 바꿔 의대에 재입학한 이십대부터 자전거 타고 왕진 가는 동네 주치의가 된 지금까지 여자로, 의사로,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과 철학,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 60여 편에 담았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안전한 의료 시스템을 향한 열망이 만들어낸 한 지역 의사의 따뜻하고 다정한 치료기이자 압축된 생의 기록이다.

책에는 저자가 의사가 된 사연부터 살림의원을 만들게 된 과정, 페미니스트로 살아오며 맞닥뜨린 의료 현장의 문제점, 이웃과 환자들의 왁자지껄한 사람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의료계의 이모저모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존에 가졌던 의사에 대한 편견을 깨주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소수자도 존중받으며 일상을 영위하고 평등하게 진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뭉클하고 재미있게 그려낸다.

이 책은 전례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독자에게 돌봄, 존엄한 삶과 죽음, 이웃, 인간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울컥하게 만드는 건강하고 맛있는 글의 성찬. 책에는 내공 있는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한번 펼치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이 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