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나 인터뷰③] 당신의 정신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하려면

입력 2020-10-14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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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쿠바인들은 왜 우리보다 행복할까
SNS의 ‘좋아요’로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서핑에서 배운 인생의 타이밍


(2편에서 이어집니다)

양: ‘쿠바인들은 가질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보니 있는 것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일에 능하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가진 게 너무 많다보니 이런 일에 서툰 걸까요.

손: 흔한 예이지만 제 앞에 있는 물컵을 보시겠어요? 뭐가 보이세요? 많이 남았죠? 우리는 이렇게 물이 많이 차 있는 사람들인데 이걸(빈 부분) 봐요. 쿠바인들은 어차피 많이 비어있기 때문에 밑바닥에 남은 걸 보면서 ‘요거라도 어떻게 잘 해보자’하는 거죠. 못 가진 거에만 집착을 한다면 자신이 너무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렵죠.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에요.

양: 요즘엔 소셜미디어가 있어서 더 그렇죠.

손: 맞아요. 내가 뭔가를 올렸는데 사람들이 ‘좋아요’를 안 누르네? 내 글에는 ‘좋아요’가 세 개인데 친구 것은 300개나 되네? 이런 데서도 좌절감을 느끼는 거죠. 이럴 경우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리젝션(rejection·배제)을 느낀다고 해요. 사회적으로 거부당한다고 느끼는 거죠.

양: 언제나 ‘비교’가 문제로군요.

손: 저 사람은 저렇게 멋진 한옥에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없지? 알고 보면 자기 집엔 정말 멋진 공간이 있는데. 운전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멋진 차를 샀다고 SNS에 올린 것을 보면 차가 없는 게 불행하게 느껴지죠. 조급해져요. 남들이 가진 것은 나도 다 가져야 할 것 같죠. 결론은 이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 못난 자식, 말 안 듣는 남편, 부족한 나의 커리어, 죽어도 승진 못하는 상황, 반응 없는 나의 작업. 있는 그 자체로 분명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어요. 자기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걸 느끼지 못하는 거죠.

양: 처음 만난 이성과도 당장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게 사람이죠. 그런데 왜 이렇게 자기 자신은 사랑하기 힘든 걸까요.

손: 에고 때문이에요. 자기가 바라는 이상향이 따로 있기 때문이죠. 그 에고는 혼자서 만든 건 아닐 거예요. 부모가, 선생님이, 사회가 주입하고 주변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만들어지죠. 제가 학생일 때 학교에서 학생들을 자극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들겠다는 이유로 전교생 성적을 공개한 적이 있었어요.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죠. 사춘기 여자애들인데. 꼴찌를 한 학생은 어떻게 학교를 다니겠어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을 거예요. 그렇게 선생님은 학생을 비교하고, 부모는 형제들을 비교하고, 직장에서도 평가하고. 그러다 보니 지금 위치에서도 좋은 점을 개발해서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들,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에고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그게 다 정신이 하는 일이었던 거예요.

양: 역시 ‘정신’이 문제로군요.

손: 정신이 너무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거리를 두면서 마음의 힘을 키우면 정신도 더 이상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돼요. 밸런스를 맞추는 게 가능해지죠. 저는 이번에 정말 신기한 체험을 했어요.

양: 책에는 서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무 파도나 올라타서도 안 되지만 이거다 싶을 때는 주저 없이 행동에 옮겨야 하고, 그냥 지나쳐야 할 때와 미련 없이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하는 때를 알아야 한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대단이 유용한 조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주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손: 아하하하! 주식이라니! 조화를 이루고 자기를 많이 사랑하게 되면 뭐가 생기냐 하면요. 자기를 믿게 돼요. 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거거든요. 서핑보드에 올라서든 인생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면 믿게 되고, 믿음은 강해지고, 드디어 보이는 거죠. 이 파도구나! 자기를 믿는 사람은 이번 파도를 못 타도 ‘다음 파도를 타면 돼’하고 생각해요. 반면 믿지 못하는 사람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게 되는 거죠. 결국 밸런스를 유지하기,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양: 이제 이 책의 하이라이트인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책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정체모를 두려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미래를 상상해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셨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거의 기억이 있는 이상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지 않나요.

손: 우리는 항상 나와 남과의 관계를 생각하죠. 나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에 대한 ‘지식’이 중요합니다. 이건 죽어도 안 되고, 이건 정말 두렵게 하고, 내 욕망은 어디까지인지. 이런 거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거죠. 외부의 조건이나 영향 없이 내가 갖고 있는 걸 파악하는 게 너무 너무 중요하거든요. 그러면서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요. ‘거기까지야. 이게 나야’하고 인정해버리면 앞에 거칠 것이 별로 없어져요.

양: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손: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상상과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판타지거든요. 현재의 순간과 삶,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믿으면서 확실히 파악하고 마음과 딱 손을 잡고 있으면 별로 두렵지 않을 거예요.

양: 두려움이란 존재가 점점 작아지는 거군요.

손: ‘너 같은 애(두려움)가 있지. 알고 있어. 그냥 거기 있어’하고 나는 가는 거죠. 제가 이 책을 쓸 때 두렵지 않았던 것도 그랬던 것 같아요.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항상 에너지 넘치고, 기쁨만 있고, 유쾌함만 있는 사람이겠어. 로봇이 아닌데. 나도 슬플 때가 있고 불행함을 느낄 때가 있지’하고 저를 받아들이는 거죠. ‘항상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만 살 수는 없어’하고 제 자신을 안아주니까 나머지 감정들이 나오는 게 두렵지 않게 됐어요.

양: 손 작가께서도 우리와 다를 게 없었군요.

손: 두려움과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죠. 이건 100%예요. 두바이에 살고 있는 왕자도 뭔가 속 썩는 일이 있을 겁니다.

양: 루드라씨는 어땠을까요.

손: 있죠. 제가 물어봤다니까요. “당신도 화를 내냐”, “당신도 부부싸움을 하냐”고요. “자기도 한대요” 하하! 다만 자신에게 화가 난다기보다는 누군가 남에게 정의롭지 않은 일을 했을 때 화가 더 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속지 마세요. 특히 SNS. 제가 올리는 것에도 속으시면 안 돼요(웃음).

양: SNS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요즘은 유튜브에서 손 작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죠.

손: 올해 초에 스페인 현지 언론들과 한국의 코로나 방역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일이 꽤 화제가 되었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문득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태리어를 배우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체득한 제 나름의 외국어 공부 노하우와 다양한 언어,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지더라고요. 팟캐스트를 한 적은 있는데, 이번에는 유튜브를 통해 소통을 해볼까 합니다.



양: 지금 보니 벌써 구독자가 9만 명이 다 되어 가네요. 반응이 뜨거운데요?

손: 이 인터뷰가 나갈 즈음엔 10만 명을 돌파했으면 좋겠네요(웃음).

양: 이제 슬슬 이 긴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송인으로 10년, 여행작가로 10년, 사업의 세계에서 5년을 보냈습니다. 왕년의 ‘계획녀’답게 앞으로의 계획도 물론 세워 놓으셨겠죠?

손: 올해는 계획을 얘기하는 게 무의미할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계획이 흔들렸을 것 같은데요. 책 속의 여행이 너무 좋았기에 올해는 두어 군데 정도 살고 싶은 도시에 가서 ‘한달 살기’를 해보려고 했어요. 어떤 곳은 장소도 구하고, 계약 직전까지 진행한 곳도 있고, 같이 갈 친구도 꼬셔 두었는데(웃음)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거죠.

양: 실망이 크셨겠는데요.

손: 지금까지 말씀 드렸듯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나를 돌아볼 때일 거예요. 밖에 폭풍우가 치고 있으니까 나의 배 안에 있는 물건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죠.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봐야 합니다.

양: 위기가 아니라 기회. 많이 들어 온 얘기지만 손 작가께서 하시니 새삼 새롭게 와 닿는 느낌이군요.

손: 코로나가 종식이 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코로나와 걱정 안 하고 공존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제 주변을,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할 생각이에요.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좀 더 쓰고. 소설을 써 볼까 싶기도 해요. 소설은 정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작업이거든요. 이 시기를 잘 보내고 나면 마치 연극의 장이 바뀌는 듯한 날이 오지 않을까요. 무대의 막이 새롭게 오르면, 그때는 제가 원하는 무대가 세팅되어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살 거고,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계를 슬쩍 보니 인터뷰 예정시간을 잔뜩 넘기고 있었다.

자신을 알 것. 마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 일을 할 때는 우선순위를 두고 반드시 스스로를 위한 작은 휴가를 마련할 것. 무엇보다 행복하고 또 행복할 것.

1시간 반의 짧지 않은 대화였지만 그 여운은 다섯 시간만큼 길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하고 또 행복할 수 있을까.

‘손미나’라는 이름의 구루를 실컷 만나고 난 기분이었다.

사진제공 | SOHN&CO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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