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주] 누가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나

입력 2020-10-22 2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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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1980년 5월, 광주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다
작품의 시종을 꿰뚫는 2시간반짜리 ‘님을 위한 행진곡’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길 건너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10분 만에 흡입하고 달려가 관람한 뮤지컬 광주.

“극이 불친절하다”라는 감상이 많았다. 대사를 노래로 대신하는 송스루 형식의 작품으로 무려 40곡이나 되는 넘버의 압박도 한몫했을 것이다. 서울대 작곡과 교수 최우정 작곡가의 음악은 확실히 귀에 친절한 편은 아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이야기라고 하니 미리 공부도 하고, 상상과 기대를 품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도 적지 않았으리라. ‘광주’하면 그려지는 이미지라는 게, 확실히 있다.

사진제공|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그런데 이 작품. 감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투쟁적이지도 않다. 한발 쑥 빠져 제3자의 반쯤 뜬 눈으로 본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그람 뭣도 아닌겨?”라고 하면 답이 쉽지 않다. 그만큼 광주 이야기는 한두 개의 시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겉에서만 보면 단순한 구조를 만들기 쉬운 이야기. 하지만 뮤지컬 광주는 눈 딱 감고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 집요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서슴지 않는다. 비록 그 결과가 ‘불친절’로 귀결되어버릴지언정 그러하다.

사진제공|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음악이 어렵지는 않다. 극적이기도 하다. 다만 몇 개의 넘버에서는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 부분은 상당히 아쉬운데, 이 작품의 넘버들은 대개 사건과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종을 꿰뚫는 음악적 모티프는 ‘님의 위한 행진곡’이다.

작곡가 최우정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조각조각 잘라 극의 순서에 따라 절묘하게 배치했다. 그러니까 조금 과장해서 이 작품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2시간 30분으로 확장해 놓은 버전이기도 하다.

성패를 떠나 좋은 시도였고,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동기와 주제를 다루는 데에 전문가인 클래식 작곡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안무도 흡족했다.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 좌절, 두려움, 기쁨을 군무로 표현한 아이디어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지만 표현과 구성이 좋았다. 확실히 이 작품의 군무는 볼거리만이 아닌 군중의 환호와 탄식, 좌절과 공포를 서늘할 정도로 환하게 관객에게 전달해 왔다.

사진제공|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그런데 이 극은 치명적인 약점 하나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505부대 편의대원 박한수의 존재. 여기서의 존재는 존재감이라기보다는 존재의 필연성에 더 가깝다. 이 존재의 필연성이 치명적인 이유는 박한수라는 인물이 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은 등장회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박한수는 이 극에서 충분히 관객의 눈에 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몇 차례의 등장은 몇 차례의 ‘복붙’처럼 느껴진다. 박한수의 혼돈과 고뇌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길다. 너무 길어서, 오히려 설득을 방해한다. 혼돈과 고뇌는 자라지 않고 조금 전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반복된다.

박한수와 문수경의 러브라인도 좀 애매하다. 이런 떡밥들이 이 작품에서는 흩뿌려진 채 종내 회수되지 못하고 만다.

사진제공|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반면 마음에 쏙 든 캐릭터는 505부대 특무대장 허인구와 열혈시민군이자 자칭 특등사수 이기백. 두 사람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회사에 충성하지만 승진에서는 종종 누락되는, 그래도 후배직원들에게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살 줄 아는 적당히 배 나온 부장이나 통기타 가수가 라이브 공연을 하는 호프집 사장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갈 만한 인물들이었다.

허인구와 이기백을 적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자칭 특등사수 이기백은 몰려오는 적을 막겠다고 도청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가장 먼저 사살 당하고 만다. 이 장면에서 짠 눈물을 코로 먹어야 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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