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란. 사진제공 | KLPGA
시드 걱정? 난 긴장하지 않았다
매년 마지막 대회 때는 다음 시즌 출전 시드가 걸린 상금 60위 ‘커트라인’에 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펼쳐진다. 순위는 불과 1계단 차지만, 60위와 61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61위는 지옥의 시드전으로 향해야 하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 정규투어에서 뛸 수 없다. 이번 시즌 최종전을 앞둔 홍란의 상금 순위는 59위였다. 16년 연속 정규투어에서 뛰면서 단 한번도 다음 시즌 시드를 걱정할 정도로 상금순위가 밀린 적이 없던 터라 주변에선 ‘걱정’했지만, 오히려 본인은 “긴장되지 않았다”고 했다. “상금 차이가 적지 않아 내가 스스로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면 (60위 이내를) 유지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누가 보면 상금왕 다툰 줄 알겠다. 쑥스럽다”며 웃었다.그렇다면 정규투어 16년차가 돌아본 2020시즌은 어떨까. “16년째 정규투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올해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대회가 잇따라 취소되고 중간에 한 달 이상 쉬었다가 시즌 막판에 대회가 몰리는 등 일정이 불규칙해서 기량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투어 생활이 점점 더 즐거워진다
그가 걷는 길이 KLPGA의 역사가 된 지 이미 오래. KLPGA 투어 최장기간(16년) 연속 시드 유지와 최다 경기 출장(331대회)의 대기록을 갖고 있는 그가 내년 다시 필드에 서면 또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그러나 언제나 현역의 자리에 있을 수는 없는 법. 이번 시즌을 끝으로 4살 아래인 허윤경(30)이 은퇴했다. 홍란은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겠지만, 새로운 길을 가는 큰 결정을 한 후배들을 보면 그 선택을 축하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담히 덧붙인 말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느 순간, 힘이 들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은퇴를 하지 못한 것은 순간의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 오래 이 길을 걷다보니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게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온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성적에 욕심을 냈을 때 더 힘들고 지쳤던 것 같다. 그런데 (욕심을 버리니)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즐겁게 투어를 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놀라고, 힘을 얻는다. 투어 자체가 점점 더 재미있어 진다. 은퇴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것
최장기간 연속 시드 유지는 빼어난 기량과 함께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기록. 홍란이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다. 그가 꼽는 ‘롱런’의 비결은 꾸준한 근력 운동과 골프와 삶의 적절한 밸런스 유지, 그리고 편안하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스폰서 삼천리와의 운명적인 만남 등 세 가지 원동력 덕분이다.“올 시즌 돌아보면 초반에는 드라이버나 롱게임이 부족했고, 후반에는 퍼팅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그는 “아직 비시즌 훈련 일정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문제까지 포함해 전체적인 점검을 해 볼 생각”이라며 “내년에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이번 겨울 어느 때보다 알차게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