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OK금융그룹 육성군에 다른 구단들이 관심 갖는 이유

입력 2021-01-20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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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금융그룹 석진욱 감독. 스포츠동아DB

요즘 V리그에서 가장 큰 화제는 OK금융그룹의 육성군이다. 항상 시즌 초반에는 기세등등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부상자 발생으로 주저앉던 팀이 올 시즌에는 달라졌다. 에이스 송명근의 부진과 몇몇 선수들의 부상으로 맞이한 위기를 이번에는 이겨냈다.

OK금융그룹은 19일 KB손해보험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하고 최근 3연승의 호조 속에 2위로 올라섰다. 팀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젊은 선수들이 속속 나타나 패배 직전의 경기를 승리로 바꿔준 덕분이다. 드래프트 1순위 신인 센터 박창성, 2년차 레프트 김웅비, 군에서 돌아온 레프트 차지환 등이 기대이상으로 활약해줬다. 이들 모두는 육성군을 거쳤다.

등장도 극적이었다. 10일 현대캐피탈에 먼저 2세트를 내준 뒤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음 세트에 뛰고 싶은 선수는 내보내줄게”라고 말했다. 이 때 용감하게 손을 들고 출전을 요청한 선수가 김웅비, 차지환이다. 둘은 20점을 합작하며 3-2 대역전극을 이끌었다. 박창성도 진상헌과 박원빈이 부진한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카드였는데 8득점으로 경기의 흐름을 돌렸다. 탄력을 받은 OK금융그룹은 14일 한국전력도 풀세트 접전 끝에 잡았다.

석 감독이 성공 모델로 만든 육성군은 사실 특별하진 않다. 막 프로에 데뷔한 신인, 실전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 군에서 복귀한 선수들만 따로 모아 훈련시키는 방식이다.

육성군을 구상한 이유가 중요하다. 실전에 투입될 몸 상태가 아니고 팀의 시스템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과 훈련하면 부상당하기 쉽다. 훈련성과도 떨어지는 데다, 팀의 경기력에도 방해된다고 판단한 석 감독은 아예 훈련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각자 능력에 맞는 선수들끼리 집중훈련을 하고, 거기서 성과를 보여준 선수에게는 기회를 줬다.

사실상의 1·2군 분리 시스템이 V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다. 일부 구단은 이런 결과를 만든 사람에게만 관심을 두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소프트웨어다.

이번 시즌 V리그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대한항공 임동혁의 경우처럼 선수마다 잠재력을 꽃피우는 시기는 다르다. 물론 임동혁도 기대주였지만 긴 시즌을 치르는 프로선수에 적합한 몸을 만들며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OK금융그룹 차지환도 군 복무를 마친 뒤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확인하고 더 절박해졌기에 지금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기다림이 필요한 선수들이 좌절하거나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 차근차근 준비할 기회를 주는 장소가 육성군이다.

1군은 지금 당장 상대팀과 싸워 이기는 데 모든 것을 거는 전쟁터다. 이런 곳에선 마음 편히 어린 선수를 키워낼 수 없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시즌을 포기할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 이번 시즌 리빌딩을 택한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가 좋은 예다. 세대교체는 많은 희생과 노력, 시간이 필요한 힘든 작업이다. OK금융그룹은 그 과정을 현명하게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금 육성군이 주목받는 진짜 이유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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