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자산어보’ 설경구 “현장에서 대본 외우면 늦은 것” (종합)

입력 2021-04-01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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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석 자만으로 신뢰를 주는 배우, 설경구가 인생 첫 사극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화 ‘자산어보’로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극장가에 따스한 봄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준익 감독님과 꼭 한 번 더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소원’(2017)을 찍을 때 감독님이 어려운 이야기를 잘 담아내준 것에 대해 신뢰와 감사함이 컸거든요. 감독님께 무턱대고 대본을 달라고 했는데 마침 사극을 쓰고 계신다는 거예요. ‘사극은 한 번도 안 해봤다’고 말씀드렸죠. 어류에 대한 영화라는데 막 끌리는 제목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캐릭터 위주로 읽어서 전체를 보지 못했는데 두 번 읽으니 마음이 움직였고 세 번째에는 눈물이 났어요. 나이 먹어서 그런가. 하하.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이고 젖어들어가는 작품이더라고요.”

‘자산어보’는 설경구가 데뷔 28년 만에 도전한 첫 사극 작품이다.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전에도 사극 제안은 있었지만 설경구가 이제야 사극에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모두 ‘이준익 감독’이었다. 이준익 감독이 준비한 작품이 사극이 아니었다면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설경구의 모습을 관객들이 아직도 못 봤을지도 모른다.

“사극 제안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어설플 때보다는 이제 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흑백 사극을 했으니 컬러로도 한두 번 더 해보고 싶네요. 총천연색은 부담스럽고 그 시대의 색을 담은 사극에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이어 설경구는 사극이기에 겪을 수 있었던 현장 에피소드를 전했다. 거센 바닷바람 때문에 촬영 도중 수염이 옆으로 날아가는 등 소소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조석으로 인해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을 피하느라 스태프고 배우고 할 것 없이 다함께 배를 들어 옮긴 날도 떠올렸다. “적은 예산에도 슬기롭게 대처하는 현장이었다”며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자산어보’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적 내용을 더해 창조됐다. 실제 ‘자산어보’를 저술한 정약전과 ‘자산어보’ 서문에 짧게 등장하는 창대를 주인공으로 했다. 설경구가 정약전을 변요한이 창대를 연기했다.



설경구가 연기한 정약전은 극 중 유배지 흑산도에서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호기심 많은 학자로, 성리학 사상을 고수하는 다른 양반들과 달리 열린 사상을 지닌 인물이다. 민중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어류학서를 집필하기 위해 글 공부를 좋아하는 청년 어부 ‘창대’와 서로가 가진 지식을 거래하며 관계를 쌓아나간다.

“실존인물도 부담스러운데 인물을 그대로 쓰는 건 더 부담스러웠어요. 하지만 ‘자산어보’는 정약전 선생님이 쓴 책이고 다른 이름을 가져다 붙일 수 없어서 ‘정약전’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죠. 참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역도산’(2004) 때도 그랬듯 제가 정약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진 않았어요. 성리학 사상이나 목민심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접근했죠. ‘섬에 들어가서 스태프들과 배우들과 섞여서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매일 습관처럼 2시간 줄넘기를 마치고 촬영에 임했다는 설경구. 어떤 일이 있어도 줄넘기를 빼먹지 않는다는 그에게 ‘줄넘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일종의 수련에 가까운 듯 했다. 설경구는 “새로운 것을 맞이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라며 “운동하고 땀을 흘리는 지겨운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그게 지겹지 않은 건 내가 맡은 배역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 덕분인 것 같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고 고백했다. 설경구는 “현장에서 대본을 안 보더라”는 변요한의 앞선 증언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TV와는 다르게 영화는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주는 것에서 받아치는 것이 더 많고 말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대사가 배우에게 큰 부담감으로 오지 않아요. 네 페이지를 1분 동안 대사하는 신이 있긴 했지만 지루했는지 편집됐어요. 하하. 숙소에서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리허설을 하다 보면 입에 붙어요. 현장에서 대본을 외운다면 그건 이미 늦은 거죠. 현장에서는 감정에 더 충실하려고 해요.”


창대로 함께한 변요한, 가거댁으로 살포시 러브라인을 형성했던 이정은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설경구는 먼저 변요한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는 “변요한이 현장에서 거의 살더라. 본인 촬영이 끝나도 현장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덕분에 오히려 내가 도움 받았다. 개구진 얼굴도 되게 귀여웠고 수줍어하면서도 살아서 펄떡거리는 것 같은 모습이 흑산도 주민 같았다. 현장도 좋아하고 거지같은 그 의상도 너무 사랑하더라”고 농담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정은과는 대학과 소극장 학전 시절부터 오랜 인연이 있었다고. 설경구는 “‘지하철 1호선’을 함께했다. 대학시절부터 너무 친하게 지내온 오누이 같은 사이다. 함께 ‘백돼지 오누이’로 불리기도 했다”고 그때 그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워낙 편해서 ‘자산어보’에서도 서로 부담 없이 촬영한 것 같다. 정말 든든했다”며 “학교 다닐 때부터 자연스러운 연기의 대가였는데 늦은 만큼 역시 대형 사고를 치더라. 이정은 씨가 잘 되어서 나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바쁘기고 하고 코로나19 문제도 있어서 자주 보진 못하지만 늘 응원한다. 앞으로 영화도 계속 많이 하고 싶다”고 전했다.

설경구를 비롯해 변요한과 이정은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함께한 ‘자산어보’는 3월 31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극장가의 위기 속에서도 개봉 첫날 3만484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1위(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4/1(목) 오전 7시 기준)에 등극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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