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리포트] 8년 쌓은 97층 금자탑…유희관 무거운 세 걸음, 기다리는 사령탑

입력 2021-04-2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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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통산 97승을 기록 중인 두산 유희관이 100승 고지를 눈앞에 두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시즌 볼넷 비율이 늘었고, 패턴도 읽혔다는 분석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 만큼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스포츠동아DB

투수는 구속이 빨라야 한다는 야구의 진리를 8년간 무너뜨려왔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은 돌은 어느새 100층을 눈앞에 뒀다. 스스로도 통념을 깨는 투수로서 자부심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벽에 부딪힌 모양새다. 늘 그랬듯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통산 100승까지 세 걸음 남은 유희관(35·두산 베어스)의 발걸음이 유독 더디다.

유희관은 21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등판해 3.2이닝 8안타 3볼넷 2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앞선 두 차례 등판에서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ERA) 12.15로 고전했던 모습이 되풀이된 셈이다. 롯데전 부진에도 시즌 ERA는 10.45로 소폭 하락했다. 그만큼 올 시즌 출발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투수가 부진할 땐 구속에서 원인을 찾는다. 어깨나 팔꿈치 등 몸에 탈이나면 가장 먼저 구속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희관은 다르다. 한창 좋았을 때도 최고구속 130㎞대 속구를 활용했는데 이는 올해도 큰 변화가 없다.

볼넷 비율에는 다소 변화가 있다. 풀타임 선발로 도약했던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9이닝당 2.50개의 볼넷으로 칼 같은 제구를 자랑했는데 올해 이 수치는 4.35개로 훌쩍 뛰었다. 표본이 많지 않지만 불안함이 들 수밖에 없다. 유희관은 원래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정확히 찌르는 보더라인 피치로 상대 타자를 현혹하던 유형의 투수였다. 살짝만 어긋나도 볼로 판정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패턴이 읽혔을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뒤 바깥쪽 느린 공으로 범타를 유도하는 방식에 타자들이 익숙해졌을 것이라는 의미다. 20일 경기에서 유희관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롯데 이대호는 “워낙 제구가 좋고 바깥쪽을 갖고 노는 투수다. 유희관 공략법이 바깥쪽 공을 밀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대호가 때려낸 적시타가 바로 그 방법이었다.

하지만 앞선 8년간도 유희관의 투구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석의 현미경으로 이미 파악했지만 알고도 못 치는 공이었다. 바깥쪽 코스가 통하지 않자 오히려 역으로 몸쪽 승부 비율을 늘리고 있다. 이대호도 의외성을 느끼며 타석에서 의아함을 느꼈다고. 장점이 사라지자 수년간 고수하던 패턴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지만, 결국 빠르지 않은 속구로는 적극적인 몸쪽 승부가 어렵다. 마지막 순간에는 바깥쪽 코스로 안타를 내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태형 감독은 22일 “선발로 나가면 이닝을 어느 정도 가져가 주는 게 자기 역할이다. 21일에도 신경 써서 던졌는데 계속 커트가 되면서 어려워졌다”며 “구속은 비슷해도 공 끝이 좋은 날과 아닌 날의 차이가 있다. 1~2㎞ 차이라도 희관이에겐 크다”고 강조했다. 너무 존을 노리는 것보단 편한 마음으로 승부를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1군 엔트리 말소는 없었다.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베어스 역사상 최초이자 역대 좌완 4호 8년 연속 10승에 팀 좌완 최다승인 97승. 유희관의 커리어는 찬란하다. 목표가 100승을 채우는 것에 고정돼있는 것도 아니다. 100승 또한 과정일뿐이다. 사령탑은 유희관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사직|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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