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미나리같은 여배우 ‘기적의 꽃’ 활짝 피우다

입력 2021-04-2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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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이 척박한 토양 위에서도 질기게 자라나는 미나리처럼 “먹고 살려고 연기”한 신산했던 55년의 성취를 맛봤다. 26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LA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그가 트로피를 받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수상은 한국배우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윤여정, 한국배우 사상 첫 美아카데미 여우조연상

굴곡진 삶 이겨내고 큰 별로
온기있는 연기, 세계가 극찬
아시아인·여성·74세 수상 등
아카데미에도 신선한 충격파
英 가디언 “아카데미의 챔피언”
“아카데미의 진짜 챔피언!(What a Champion)”(영국 가디언)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지만, 실제 영광의 순간에 가슴 벅찬 표정이 드러났다. 자신이 마침내 한국배우 최초의 기록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상기됐다.

배우 윤여정이 26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미국 LA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한국배우 최초의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고 내놓은 거침없고 유머러스한 소감에 전 세계 시청자와 관객도 환호했다. 74세 노년의 배우가 힘겨운 시대의 세계인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1966년 데뷔 이후 55년 동안 이어온 연기 인생에서 그 자신, 정점에 오른 순간이었다. 작품·감독·남우주연·각본·음악상 등에 후보로 오른 ‘미나리’가 수상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달랬다.

“복합적인 유리천장 깨다”
윤여정은 1957년 ‘사요나라’의 일본 출신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아시아권 배우 두 번째로 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미나리’의 제작자이자 배우 브래드 피트로부터 호명된 그는 차분히 무대로 나아갔다. 그는 “한국에서 온 윤여정”이라고 소개하고 “늘 TV로만 보던 무대에 직접 올라 믿을 수 없다”며 감격해 했다. 이어 “영화를 찍으며 가족이 된 스티븐(연), 정이삭 감독, 한예리, 노엘 등 우리 팀 모두 감사하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이들과 함께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한인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했다. 짓궂지만 따스한 가족애를 드러내며 한국적 정서 가득한 캐릭터로 해외 관객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최근 미국배우조합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등 품에 안은 42개의 트로피가 이를 입증한다.

평단은 윤여정이 “복합적인 ‘유리천장’을 깼다”고 평가했다. 이날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아시아인이며 여성, 게다가 70대의 나이로 수상한 것은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아카데미 역사에도 분명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윤여정의 개성 강한 연기가 얻어낸 성과라는 분석도 내놨다. 전 평론가는 “함께 후보에 오른 ‘힐빌리의 노래’ 글렌 클로즈도 할머니 역이었지만, 전형성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며 “손자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등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 순자를 연기한 ‘미나리’의 윤여정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미나리’를 공식 초청해 선보였던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도 “영화의 따스한 온기가 윤여정의 연기를 통해 증폭됐다”고 밝혔다.


“아시아 배우의 역사를 다시 쓰다”
앞서 윤여정의 수상을 예측한 외신들도 높은 점수를 줬다. 미국 LA타임스는 윤여정이 “60여년 만에 아시아 배우 수상의 역사를 썼다”고, 뉴욕타임스는 “영국 아카데미에 이어 또 다시 유쾌한 수상 소감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 등도 “미국배우조합상과 영국 아카데미 수상 이후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등을 제칠 강력한 후보로 꼽혀왔다”고 되짚었다.

이 같은 소식에 한국의 후배들도 축하의 대열에 나섰다. 이날 김혜수·이병헌·전도연 등 적지 않은 배우들이 SNS 등을 통해 윤여정에게 박수를 보냈다. 2017년 미국드라마 ‘하이랜드’에서 윤여정과 호흡을 맞췄던 샌드라 오를 비롯해 아콰피나, 대니얼 대 김 등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들도 인사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여정에게 축전을 보내 “끊임없는 열정으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분들에게까지 공감을 준 연기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려낸 윤여정의 연기가 너무나 빛났다“고 말했다.

배우 윤여정 프로필

▲ 1947년 6월19일 서울 출생
▲ 1966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TBC(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3기
▲ 1967년 드라마 ‘미스터 곰’ 첫 주연
▲ 1971년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 스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대종상 신인상·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역대 첫 장희빈 캐릭터
▲ 1972년 영화 ‘충녀’ 등
▲ 1973년 12월 미국행
▲ 1984년 귀국, MBC ‘베스트셀러극장-고깔’ 편 복귀
▲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등 다양한 드라마 주조연
▲ 2000년대 이후 영화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여배우들’ ‘돈의 맛’ ‘하녀’ ‘죽여주는 여자’ 등 독특한 노년 캐릭터 구현
▲ 2015년 라나·릴리 워쇼스키 자매 감독의 미국드라마 ‘센스8’
▲ 2021년 미국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주연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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