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기자의 여기는 도쿄] ‘원팀·뉴페이스·품격’ 모두 보여준 한국 양궁, 이래서 최강이구나!

입력 2021-08-01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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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제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와우, 코리안 프렌즈 어게인. 아처리(Archery·양궁)!”


2020도쿄올림픽 양궁 경기가 열린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한 인도 기자가 건넨 말이다. 양궁장으로 가는 버스에 타면 항상 한국 취재진을 볼 수 있기에 친근감을 내비친 것이다. 전 종목 석권까지 노리고 있었던 데다 선수들이 시작부터 연일 최고의 페이스를 보인 덕분에 양궁장은 한국 취재진에게 매우 인기 있는 장소였다. ‘금메달을 보고 싶다면 양궁장으로 가라’는 말은 정설이었다.


결과도 훌륭했다. 7월 24일 혼성전에서 김제덕(17·경북일고)-안산(21·광주여대)이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물한 것이 시작이었다. 강채영(25·현대모비스)-장민희(22·인천대)-안산이 25일 여자단체전, 오진혁(40·현대제철)-김우진(29·청주시청)-김제덕이 26일 남자단체전에서 금맥을 캤다. 안산은 30일 여자 개인전까지 석권하며 올림픽 양궁 최초의 3관왕이 됐다. 비록 남자 개인전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세계적으로 실력이 상향평준화한 상황에서 최강의 자리를 지켜낸 것만으로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팀은 ‘원 팀’의 소중함과 세대교체의 중심이 될 뉴페이스, 양궁 최강국의 품격을 모두 보여줬다.

안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원 팀’의 소중함

올림픽과 같은 국제종합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팀워크다. 특히 멘탈(정신력)이 중시되는 스포츠인 양궁은 팀워크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결과로 나타난다. 한국 선수들에게 그런 걱정은 불필요했다. 끈끈했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당시 여자대표팀 막내였던 강채영은 장민희, 안산을 이끌어야 하는 맏언니의 중책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어떠한 부정행위도 없이 순수 실력으로 대표팀에 선발된 선배들을 보고 배운 학습효과는 상당했다. 그 리더십으로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후배들을 이끌었다.


남자대표팀은 오진혁과 김우진이 11살, 김우진과 김제덕이 12살 차이였다. 그만큼 신구조화가 중요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팀이었다면, 막내가 크게 주눅 들어 자기 기량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는 환경이다. 그러나 오진혁은 큰형님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감쌌고, 김제덕은 대선배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파이팅을 외치는 패기를 보여줬다. 김우진은 무려 23살 차이의 맏형과 막내 사이에서 완벽하게 중심을 잡았다.

안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뉴페이스

남녀대표팀 막내 김제덕과 안산은 이번 대회를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김제덕은 출국 전 미디어데이 때부터 대선배들 사이에서 연신 “파이팅”을 외쳐 ‘파이팅 맨’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단순한 패기에 그치지 않고, 혼성전과 남자단체전에서도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기며 한국 양궁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줬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과감하게 격발하는 멘탈(정신력)은 마치 베테랑 선수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안산은 역대 올림픽 첫 양궁 3관왕이다. 혼성전과 여자단체전, 여자개인전까지 휩쓸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불필요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착실히 개인전을 준비해 우승까지 일궈낸 정신력에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대회를 앞두고는 “출전하는 종목 중 하나라도 1위를 했으면 좋겠다. 특히 9연패라는 중요한 기록이 걸린 여자 단체전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여자부 전 종목 석권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어디서도 주눅 들지 않는 성격”이라는 류수정 여자양궁대표팀 감독의 평가는 안산의 미래를 더욱 기대케 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품격

대표팀은 대회 기간 내내 양궁 최강국의 품격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대표팀 맏형이자 한국 선수 최고령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등극한 오진혁은 남자단체전 시상식이 끝나고 포디움에 선 일본, 대만 선수들까지 한데 모아 ‘셀카’를 찍었다. 국적·인종과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엄청난 노력을 통해 메달을 획득한 이들의 기쁨을 두 배로 늘려준 큰 형님의 품격이었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패자의 품격을 보여준 김우진의 인터뷰도 돋보였다. 31일 남자개인전 8강에서 당즈준(대만)에 패한 뒤 한 외신 기자로부터 “충격적인 패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충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포츠에 결과는 정해져있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열광하는 게 아닐까”라고 밝혔다. 본인을 꺾은 당즈준이 잘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준비된 모든 화살을 다 쐈다. 3년 뒤 파리올림픽을 위해 또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쉬운 패배를 뒤로하고, 마지막까지 승자를 치켜세운 김우진의 품격은 한국 양궁이 왜 쉽게 무너지지 않는지 보여준 대목이었다.

도쿄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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