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에 살고, 족구에 죽는 남자…대한민국족구협회 홍기용 회장 [인터뷰]

입력 2021-11-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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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족구를 즐기는 날이 올 겁니다”. 홍기용 대한민국족구협회장이 공인구, 족구화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세계화를 염두에 둔 족구의 공식 영문명은 ‘JOKGU’지만 한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족구(足球)’가 중국에서는 축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족구, K-스포츠로 키워 세계로 나가야”

대중성·경제성·재미 겸비…세계인이 빠질 것
5년 전 대한체육회 정회원…동호인 200만 명
전국체전 정식종목 채택해 대중화 물꼬 터야
“족구할 줄 하십니까.”

자리를 권하자마자 홍기용 회장이 질문을 던져왔다. “대한민국 남자치고 족구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성인 남자 중 족구 한 번 안 해본 사람 찾기는 우산 모양이 새겨진 달고나 뽑기 성공자를 찾는 것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군대를 다녀왔다면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온전히 경험자 수로만 치면 ‘국기(國技)’의 자리는 마땅히 태권도가 족구에게 양보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정작 “좋아하는 운동이 뭡니까”라는 질문에 선뜻 “족구”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저씨 운동’, ‘군대 스포츠’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비운의 인기종목 족구. 왜 이렇게 되었을까.

홍기용 회장은 십수 년간 이런 고약한 편견과 싸워온 사람이다. 아니, 그의 욕심은 고작 이따위 편견을 상대로 한 승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족구를 K-스포츠로 키우고 세계로 나아가 대한민국을 ‘족구종주국’으로 추앙 받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자 목표다.

족구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남자, 사랑하는 족구를 세계 만인의 연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남자. 홍기용(50) 대한민국족구협회장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협회 회장실에서 만났다.

31년 역사, 2016년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
“요즘은 그래도 족구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예능프로그램이나 리그 중계 등이 방송을 타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홍 회장은 ‘족구는 남자만 한다’라는 것도 옛말이라고 했다. 언론에 노출이 잘 안 돼서 그렇지 여성들도 족구를 많이 하고 있고, 여성을 위한 족구대회도 열리고 있단다. 홍 회장은 “우리 협회 부서 중에는 여성부도 있다”고 했다.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족구협회가 있고, 심지어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족구협회는 1990년에 창립돼 3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2016년 사단법인으로 면모를 일신하면서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가 됐으며 현재 전국 17개 시·도, 228개 시·군·구에 족구협회가 가입돼 있다. 홍 회장은 올해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홍 회장은 뒤늦게 족구에 입문한 케이스다. IMF 시절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돼버린 홍 회장은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처음 몇 년은 거지생활이었죠. 길거리에서 담배꽁초도 주워 피우고, 전기세를 못내 전기가 끊기니까 아파트 매니저가 자기 집에서 전깃줄을 끌어다 줘서 겨우 전등을 켜기도 하고. 그렇게 3∼4년 고생을 하다보니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기회라는 게 제게도 찾아오더라고요.”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홍 회장은 지인의 권유로 족구클럽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회원들은 속칭 ‘구멍’인 홍 회장을 은근히 무시하며 눈치를 줬다.

“족구를 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나. 차를 몰고 클럽으로 향하다가 갑자기 가기가 싫어지더라고요. 가봐야 또 핀잔이나 들을 텐데. 그만 둬야겠다 싶어 차를 틀었죠.”

그런데 집 쪽으로 한참 가다보니 억울한 마음이 들더란다. 그만 두더라도 지금 그만 두면 괜히 지는 거 같으니, 한 3개월 ‘빡세게’ 운동해서 저 사람들이 “제발 우리 팀에 있어달라”고 할 때 보기 좋게 때려 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다시 유턴. 홍 회장은 이날부터 맹렬한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공을 허공에 매달아놓고 차는 연습을 하고, 잠을 잘 때는 (다리를 찢기 위해) 침대 양쪽에 다리를 벌려놓고 잤다.

“진짜 3개월쯤 지나니 사람들이 잔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멋지게 그만 둬야 하는데, 그땐 이미 족구의 재미에 완전히 빠져버린 거죠.”

그날의 일대사건이 적어도 족구계에서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만큼이나 의미있는 ‘족구 유턴’이었겠다고 하니 홍 회장이 “으하하!” 웃었다.

전국체전 거쳐 세계무대로 간다
요즘 대한민국족구협회에게 최고의 숙원사업은 족구가 전국체전에 정식종목으로 당당히 입성하는 것이다.

“족구는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유일한 구기 스포츠입니다. 이 재미있고, 즐겁고, 비용도 많이 안 들어가는 종목을 왜 세계적인 스포츠로 못 만드는 겁니까. 왜 아시안게임에, 올림픽에 못 나가는 걸까요.”

전국체전은 족구가 K-스포츠의 이름표를 달고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홍 회장은 ‘족구가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야 하는 이유와 정당성’에 대해 ‘대중성’, ‘경제성’, ‘재미’를 꼽았다. 족구가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된다면 학교체육의 길이 열리면서 청소년, 학생들에게도 족구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족구의 ‘진짜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독도와 김치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200만 명의 족구 동호인이 있습니다. 족구는 대한민국을 벗어나 세계인들과 함께 하는 스포츠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언젠가 족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펄럭일 때 우리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지켜온 족구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홍 회장이 인터뷰를 마치며 공인구를 쓱 들어 보였다. 축구공보다는 조금 작고, 배구공보다는 조금 더 무거운 족구공. 비록 한 뼘 크기의 작고 예쁜 공이지만, 그 꿈은 지구만큼이나 크고 무거워보였다.

○홍기용 회장

○1971년 경기 김포 ○중앙대 체육학과 졸업 ○이기엔터프라이즈 대표 ○2010∼2014 미주족구협회 1·2대 회장 ○2010∼2012 미주 한인체육회 이사 ○2021∼ 대한민국족구협회 2대 회장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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