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의 전쟁’ 미국-이란, 월드컵에서 만나면 어떤 일이? [카타르 리포트]

입력 2022-11-30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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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서로간의 입장이 달라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를 흔히 ‘물과 기름’으로 표현한다. 스포츠에도 존재한다. 미국과 이란이 딱 그런 사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양국은 핵문제, 인권 등을 놓고 끊임없이 충돌하며 격하게 대립해왔다. 요즘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기를 비밀리에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을 미국이 몰아세우고 있다.


물론 스포츠에선 정치적 중립이 엄격하게 요구된다. 월드컵도, 올림픽도 똑같다. 그럼에도 양국이 경쟁하면 전혀 다른 문제다. 분명 라이벌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공기가 아주 차갑고 불편하다. 2022카타르월드컵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미국과 이란은 2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만났다. 30일(한국시간) 도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B조 최종전(3차전)에서다. 승자는 전반 38분 크리스천 풀리식(첼시)의 결승골을 앞세운 미국이었다.


좀더 유리한 쪽은 이란이었다. 잉글랜드에 2-6으로 대패한 뒤 웨일스를 2-0으로 꺾고 1승1패를 만든 이란은 이날 무승부만 거둬도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반대로 잉글랜드~웨일스와 잇달아 비긴 미국은 승리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알투마마 스타디움은 여느 때보다 뜨거운 함성과 적개심 가득한 야유로 뒤섞였다. 경기 전 워밍업 때, 국가를 부를 때부터 심상치 않던 기운이 감돌던 피치에선 선수들이 허슬 플레이로 거듭 충돌했고, 그 때마다 관중석에선 날선 외침이 난무했다.


한 번 쓰러지면 한동안 일어나지 않는 ‘침대축구’로 정평이 난 이란이지만, 이날 경기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미국이 몰아세우면 받아치고, 곧장 선 굵은 플레이로 응수했다.

이번 월드컵부터 유독 길어진 추가시간의 영향도 컸다. 과거에는 5분 넘게 주어지면 ‘길다’는 반응이었는데, 카타르에선 대기심이 10분을 알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반 평균 추가시간이 4~5분 이상이니, 넘어지더라도 정말 아프지 않는 한 곧바로 일어설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다만 미국이 좀더 절박했다. 2014년 브라질대회 이후 8년 만에 컴백한 월드컵 본선에서 다시 한번 16강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넘쳤다. 아울러 ‘이란 징크스’도 깨고 싶었다. 1998년 프랑스대회 조별리그에서 1-2로 패한 데 이어 2000년 1월 평가전에서 1-1로 비겼던 미국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경기장 취재석 분위기도 사뭇 흥미로웠다. 남성뿐인 이란 기자들은 자국대표팀 유니폼을 걸치거나 국기를 소품으로 준비해왔다. 경기 내내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고 있는가. 자유의 땅과 용맹한 자들의 고향에서~”라는 가사의 국가를 부르는 미국인들을 바라보며 온 세상이 무너진 듯 당혹스러워하는 이란인들의 표정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도하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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