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가 물처럼 흘렀다” 손열음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12]

입력 2023-03-22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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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모차르트 소나타 18곡 전곡 녹음
-모차르트 전문가다우면서 지극히 ‘손열음적인’ 연주 들려줘
-전집을 녹음한다는 것은 연주자 인생의 스펙트럼을 내보이는 행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75~1789)는 피아노 소나타 작품을 18곡 작곡했습니다. 그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었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27곡이나 남겼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나타 작품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모차르트의 후배인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거의 2배에 가까운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지요.

서운하지만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 소나타에 비해 살짝 폄하되어 온 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연주하기 쉽다’라는 것 때문인데요. 실제로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도 심심찮게 어린이들이 치는 모차르트 소나타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치기 쉽고, 예술성도 떨어지는 작품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20세기 초반의 거장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르 슈나벨의 어록이 유명합니다.

“모차르트 소나타는 아이가 치기엔 너무 쉽고, 어른이 치기엔 너무 어렵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의 소나타와는 또 다른 이유로 모차르트의 소나타 연주를 어려워합니다. 누구나 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아무나 잘 칠 수는 없는 것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들이 모차르트 소나타 18곡 전집을 녹음한 사실만 봐도 프로 피아니스트들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작품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 안드라스 쉬프, 미츠코 우치다, 글렌 굴드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오래된 녹음인 응글리트 헤블러, 릴리 크라우스 여사의 전집을 자주 들었습니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손열음씨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낸 것인데요. 프랑스 음반사 나이브와 전속 계약을 맺은 후 녹음한 첫 음반이 모차르트 작품이라는 것은 과연 손열음씨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열음씨는 음반 출시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모차르트는 나에게 집이자, 모국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손열음씨가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을 때 연주했던 곡도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이었습니다. 이 라이브 영상은 클래식 장르임에도 유튜브에서 2000만 뷰를 달성했다고 하지요. 저도 수십 번 본 영상이기도 하고요.

한 작곡가의 전집을 녹음한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대단한 도전이자 모험입니다. 연주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예술적 기량과 감성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악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음악적 문제들을 놓고 작곡가와 더없이 깊은 교감을, 때로는 치열하게 맞서 대결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그러하기에 전집을 녹음한다는 것은 연주자의 현재 시점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전체 인생의 스펙트럼을 얇디얇은 음반에 얹어 내보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나온 6장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에는 손열음씨가 이해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의 ‘손열음’을 가감없이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는 것은 감상자의 권한이겠지만, 이는 누구보다 손열음씨가 기대하는 바일 것입니다.

이 음반에서 손열음씨는 모차르트 전문가다우면서 지극히 ‘손열음적인’ 연주를 들려줍니다. ‘음표가 물처럼 흐르는 연주’라고나 할까요. 햇살 따뜻한 오후, 창문을 열고 방지턱이 없는 국도를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9번 K.310 1악장 알레그로가 딱 그렇습니다.
주제의 변주 또한 기어의 변속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말랑말랑한 모차르트는 아닙니다. 눈물이 고인 미소와 같은, 모차르트 특유의 슬픔이 가득한 연주도 있습니다.
기쁠 때는 장조로, 슬플 때는 단조로 들리는 모차르트의 양면적인 감성도 손열음씨는 정확하게 읽고 있습니다.
명장 최진 프로듀서가 참여했다는 녹음도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16번 K.545는 손열음씨가 자신의 ‘첫 사랑’이라고 표현할 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저는 이 곡을 오래도록 듣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동네 피아노 선생님께 등을 떠밀려 작은 콩쿠르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들고 나간 곡이 바로 16번 K545였답니다.
결과는 초반부터 대박 ‘삑사리’를 내고 객석에 큰 웃음을 선사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제 첫 콩쿠르이자 마지막 콩쿠르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이 곡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기는 바람에 좀처럼 듣지 않았는데, 이번에 손열음씨의 연주로 오랜만에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딱 든 생각은 ‘아, 그때 이 절반만 쳤어도 심사위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1등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것이었는데요.
손열음씨의 멋진 연주 덕에 즐거운 상상 속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이 음반 덕분에 1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마냥 행복합니다.
손열음씨의 모차르트는, 갓 지은 쌀밥 같은 음악이로군요.
저는 평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파이플랜즈

※ 일일공프로젝트는 ‘일주일에 한 편은 공연을 보자’는 대국민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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