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 속 기독교 코드들…김준수의 ‘엘’은 신의 이름이었다 [양형모의 일일공프로젝트 26]

입력 2023-05-31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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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소설, 웹툰 등을 보고 있으면 의외로 기독교와 관련된 코드들이 왕성하게 발견되곤 합니다. 이런 코드들은 친 기독교적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반 기독교적인 경우도 있지요(사실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런 코드를 찾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은 제가 꽤 좋아하는 감상법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데스노트’에서도 이처럼 기독교와 관련된 코드들이 발견됩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으니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데스노트의 리뷰형식 기사는 몇 번 썼으니, 이번엔 모처럼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데스노트에는 기독교적 코드와 상징이 풍부합니다. 대부분은 기독교의 정통적 상징들을 살짝 비틀었지요.


예를 들어 죽음의 신인 류크가 즐겨 먹는 사과는 선악과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선악과는 구약성서 제일 앞에 있는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하와(이브) 할머니께서 이 선악과를 따 자시는 바람에 우리 후손들이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붉은 사과는 김준수, 김성철 엘(L)이 끊임없이 먹고 있는 빨간 사탕, 초콜릿과도 연결됩니다.

이제 캐릭터들의 이름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뮤지컬 데스노트의 캐릭터들의 이름은 거의 노골적으로 기독교적인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인 야가미 라이토(홍광호, 고은성 분)와 엘부터가 그렇습니다.

일본식 발음인 라이토는 ‘Light’죠. Light는 물론 빛을 의미합니다.
라이토는 세상을 비추고 구원하는 빛입니다(물론 자칭입니다만).
이 빛의 힘의 근원은 데스노트죠. 데스노트는 인간의 죽음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신의 권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데스노트의 진짜 주인인 죽음의 신은 창조주와 같은 힘을 갖고 있습니다.


라이토는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신이 되겠다”고 선언하지요. 그와 듀엣 곡을 부르는 아버지 야가미 소이치로(김용수, 서범석 분)는 아들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신이 되어라”고 부추깁니다. 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정의를 세웁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와 아들의 정의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이 이 노래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라이토(라이트)’만으로는 부족하다고요? 그럼 하나 더.
야가미 라이토의 야가미 중에서 가미(카미)는 일본어로 신을 의미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저 유명한 자살특공대인 ‘카미카제’를 기억하시지요. 여기서의 ‘카미’가 바로 신입니다. 당시는 ‘신=천황’이었지만요.

야가미 라이토의 왜곡된 정의에 맞서는 인물은 명탐정 엘이죠.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엘은 김준수 배우와 김성철 배우가 연기하고 있습니다.
두 배우의 ‘엘’은 같은 캐릭터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해석을 보여줍니다. 김성철의 ‘엘’이 원작에 지극히 충실하다면, 김준수의 ‘엘’은 배우가 아예 처음부터 자기화 해버린 엘입니다. 유일무이한 ‘엘’이기에 그의 ‘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 수 없이 부디 그가 오래 오래 이 역으로 무대에 서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엘의 발음은 EL입니다. EL은 기독교에서 신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엘로힘’이죠.
하나님의 이름 중에는 엘로힘 외에 ‘엘 사다이’도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신의 천사들의 이름도 EL과 관련이 많습니다.
가브리엘, 라파엘 등 천사들의 이름에서 EL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거든요. 서양화에 표현된 천사들을 보면 한결같이 흰 옷에 흰 날개를 갖고 있습니다.
극중 엘의 의상은 천사의 날개를 떠올리게 하는 화이트입니다.

천사는 악마에 맞서 싸우는 존재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천사(L)는 빛(라이토)에 대적합니다.
데스노트를 가진 라이토는 자신의 이름과는 반대로 점차 ‘어둠’으로 변해갑니다.


라이토를 사랑하는 여인이자 아이돌 스타인 아마네 미사(류인아, 장민제 분)는 악마로 변해가는 라이토를 위한 구원자로 등장합니다. 천주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제사가 ‘미사’입니다.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시지요.

데스노트에서 미사를 도운 죄로 모래가 되어 소멸하는 비극의 주인공은 죽음의 여신 렘(Rem)입니다. 이번 시즌에서는 이영미, 장은아 배우가 맡고 있죠.
렘은 어린 양 Lamb을 연상하게 하는 발음입니다. 양은 구약시대에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신에게 바치던 제물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르지요.
렘 역시 미사를 대신해 희생하는 존재입니다.

또 다른 죽음의 신으로는 서경수, 장지후 배우가 맡고 있는 류크가 있습니다. 류크는 단순히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데스노트를 인간 세상에 던진 괴팍한 신입니다.
류크의 이름은 신약성서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Nougat)의 영어식 이름과 닮았습니다. 그 이름은 Luke(류크·누가)입니다.
누가는 신약성서 누가복음의 저자이기에 앞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였습니다.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류크는 반대로 인간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존재입니다.


데스노트 또한 기독교적인 아이템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책이 등장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최후의 심판 때 비로소 생명의 책이 펼쳐지게 되고, 이 책의 명단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가르치지요.
생명의 책은 또 다른 의미에서 데스노트이기도 합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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