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화란은?, ‘화란’ [윤성은의 모든 날 모든 영화]

입력 2023-09-26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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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은 명안시에서 나고 자란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지만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다. 십대의 ‘연규’(홍사빈)는 정치인과 조폭이 결탁되어 있고,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간극이 큰 명안시를 떠나고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은다. 네덜란드(화란)에서는 다들 비슷비슷하게 산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의붓여동생 ‘하얀’(김서형)을 외면하지 못하고 일진을 돌로 내려쳐 당장 합의금 300만원이 필요한 처지다. 여기에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의붓아버지의 존재 또한 하루하루 그가 감내해야 할 현실이다. 자연히 그가 벗어나려는 명안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끊어내기 어려운, 같이 살기에 가족이 되어 버린 질긴 관계와 합치된다.

그래서 ‘화란’의 서사는 명안시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조폭의 소굴과 연규의 가정, 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조직에는 중간보스인 ‘치건’(송중기)이 있다. 그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우울하고 희망 없는 도시에서 태어나 깡패짓을 하며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소년 시절 호수에 빠져 죽을 뻔한 자신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아버지와 명안시가 동일시된다. 그는 감히 구원을 바랄 수 없다. 구원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이나 꿈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규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연민, 결말까지 이어지는 그 뜨거운 감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호수 사건 이후 육체라는 껍데기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치건이 우연히 스쳐간 연규에게 300만원을 아무런 대가 없이 전달한 것도 그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이 느꼈던 절망과 고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규가 조직에 발을 들이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 버린다. 연규는 여느 조폭과 달리 차분하고 다정한 면모를 가진 치건에게 점점 더 의지하게 되고, 치건 또한 연규의 전쟁터 같은 가정 환경을 알게 되면서 ‘형’을 자처한다.

사실, 두 사람은 형제라기보다 그들이 공히 경험해보지 못한 부자(父子) 관계를 형성한다. 치건은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연규에게 투사해 여느 아버지들처럼 그를 보호하려 하고, 연규는 얼굴도 모르는 친아버지의 부재를 치건으로 대체한다. 연규에게는 친절하고, 사회생활도 가르쳐주며, 돈도 쥐어 주는 치건이 이상적인 아버지의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치건이 연규에게 매운탕의 생선 발라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호수에서 낚시줄에 걸려 올라와 목숨은 건졌지만 그 날 이후 영혼 없이 살고 있는 치건과 매운탕 속 물고기는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치건에게도 낚시줄은 구원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연규가 혼자 생선을 능숙하게 발라먹는 장면은 조직 안에서 그의 성장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순수와 폭력을 교환함으로써 얻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명안시에서 나고 자란 두 사람의 교감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뿌리내리는 방식으로 작동한 것이다.


결말로 가기 위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한 쌍의 아버지와 아들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가난하지만 어린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사채 때문에 조폭들에게 시달리다가 아들이 사고를 당해 깨어나지 못하자 이성을 잃는다. 삶의 의미가 사라진 듯 조폭들에게도 겁 없이 맞서는 그를 부정(父情)에 약한 치건과 연규는 함부로 하지 못한다. 특히, 아들과 친분이 있던 연규는 그를 해치지 않으려 자신의 위험까지도 감수하는 만용을 부린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후에 그 은혜는 비수가 되어 연규의 등에 꽂히고 만다. ‘화란’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폭력의 수위가 아니라 이처럼 번번이 희망의 싹을 짓이겨버리는 비정함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화란’은 타락한 도시에 깔린 염세주의와 비관주의부터 끊임없이 연규의 뒷모습과 그림자를 쫓는 카메라까지, 정통 누아르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자멸로 끝나야 마땅할 검은 영화(Film Noir)의 결말부에 감독은 마치 반전처럼 밝은 색을 칠해 장르 영화의 식상함을 탈피해 보려 한다. 연규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정과 사족으로 느껴지는 신도 있지만 연규가 명안시와 가족을 동시에 벗어나게 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 정도로 이해된다. 물론, 영화 전체를 밝히기에는 가느다란 빛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한 발짝 나아가려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의미하다. 영화를 보면서 ‘화란’이 이상향을 의미하는 ‘和蘭’인지 재앙과 난리를 뜻하는 ‘禍亂’인지는 끝까지 판단을 유보하시기 바란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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