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저 / 한겨레출판)
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등의 번역으로 유명한 32년 차 번역가이자 ‘역자 후기의 장인’, 그리고 산문집 ‘혼자여서 좋은 직업’ 등을 통해 ‘믿고 읽는 작가’로 사랑받고 있는 ‘한국의 마스다 미리’ 권남희. 그가 자신의 산문집 신간 ‘스타벅스 일기’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 책은 작가가 딸을 독립시키고 인생 처음으로 ‘진짜 독립’을 시작한 뒤 찾았던 스타벅스에서의 소중하고 유쾌한 일상을 보여준다. ‘완벽하게 육아가 끝난 날’의 홀가분함도 잠시, 작가에게는 홀로 남은 집안에서 ‘빈둥지증후군’으로 인해 일할 의욕도, 식욕도, 살아갈 의미도 잃고 폐인처럼 우울하게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스타벅스를 찾아간다.
‘눈치 없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일해도 되나?’ 바짝 쫄며 들어간 스타벅스. 내향인 중에서도 ‘대문자 I’로 불리는 극 내향형인 작가에게 그곳은 고작 1년에 한두 번 테이크아웃해본 게 전부였던 곳이다.
깔끔한 공간과 적당한 소음, 조밀하게 붙어 있는 테이블 사이에 앉아 글을 써보니, 집에서는 한 줄도 못 썼던 원고가 이상하게 술술 쓰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타벅스는 가는 곳마다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딸 정하가 편한 집 놔두고 ‘스벅(스타벅스의 줄임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하면 그리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순간 완벽하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작가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힐링에 주목하며 특별한 것 없는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자신만의 ‘스타벅스 일기’를 완성했다. 그것은 브랜드의 유명세 때문도, 매장 인테리어 때문도, 독보적인 커피맛 때문도 아닌, 스벅을 찾아오는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고객, 그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수많은 파트너(직원들) 덕에 가능했다.
작가는 날마다 그날 마실 음료를 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다양한 시즌 한정음료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내기도 하고,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나 옷차림, 자신과 짧게 스친 인연들을 붙잡아 때론 가벼운 웃음으로, 때론 삶에 관한 묵직한 사유로 담아낸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지나며 창밖에 보이는 풍경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변화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랑도 많고 사람도 좋아하는 작가는 ‘스타벅스’라는 공간을 만나, 자신의 주위를 슬며시 장악하며 주변 이들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나눠준다. 때론 옆 테이블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스벅 베이비시터’를 자처하기도 하고, 당근마켓 게시판에서 이어폰을 잃어버린 사람의 호소를 보고 일면식 없는 사람의 물건을 찾아주러 매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출동하기도 한다.
어느 날에는 가출한 딸을 찾아 스타벅스에 왔다가 무시만 당하고 돌아선 옆자리 중년 여성을 안타깝게 보다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엄마로서의 동병상련을 나누기도 한다.
이처럼 “아줌마가 주책”이라며 부리는 ‘귀여운 오지랖’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어느 샌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작가의 포근한 관심을 받고 싶어진다.
작가는 이따금 시트콤보다도 더 코믹하고 명치를 때리는 글들로 독자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구절을 떠올리며 스타벅스 별 모으기(별 12개를 모으면 음료 1잔이 무료)에 진심인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당근마켓에서 기프티카드를 구입하려다 초등학생에게 사기당할 뻔한 뒤 딸에게 구박당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책은 1부 겨울을 시작으로 2부 봄, 3부 여름, 4부 가을까지 사계절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는데, 3부 딸과 함께한 여름휴가 편에서는 서울과는 다른, 부산·나고야 스타벅스의 특색 있는 음료와 공간을 자세히 소개하며 ‘스벅 마니아’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작가와 함께 텀블러 하나를 들고 스타벅스의 문을 여는 순간,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일 수 있는 날들을 특별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긍정 파워 ‘권남희 매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양형모 스포츠동아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