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잔나비의 ‘모든소년소녀들 2025’ 콘서트.

4월 26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잔나비의 ‘모든소년소녀들 2025’ 콘서트.




드럼과 베이스가 쏘아올린 신호탄, ‘별세계’로 달려간 잔나비의 2시간 30분
게스트 없이 풀어낸 27곡, 그리고 찐팬들도 놀란 신곡 7곡 대공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짠 땀의 퍼포먼스, 최정훈과 김도형이 만든 무대의 맛
4월 26일 토요일 오후. 잠실실내체육관 주변 공기는 잔나비의 스멜로 가득했다. 제각기 잔나비의 냄새를 흠뻑 묻힌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아니 열명 스무명씩, 아니 100명 200명씩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콘서트 ‘모든 소년 소녀들 2025’가 열리는 첫날이었다.

5시 정각이 되자 두 대의 드럼, 베이스가 고막에 지진을 일으키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드디어 최정훈, 김도형의 무대 등장. 팬들의 함성에 공연장의 공간이 순간 일그러져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2시간 30분의 숨도 못 쉴 질주. 이곳은 시간이 멈춘, ‘잔나비’란 이름의 별세계였다.

게스트(따위는!)는 없었다. 오롯이 잔나비, 잔나비, 또 잔나비였다. ‘pony’로 문을 열어 ‘꿈과 책과 힘과 벽’으로 콘서트의 문을 닫기까지 총 27곡을 쏟아냈다. 앙코르 2곡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잔나비 전집’을 보고 나온 기분. 잔나비는 단 1초도 관객의 심장이 허투루 뛰게 놔두지 않았다.

새 앨범 출시를 코앞에 둔 상황이라 이날 콘서트에서 신곡이 공개될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팬들은 ‘1~2곡 정도 풀겠지’ 싶었겠지만, 잔나비는 아낌없이 지구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곡들을 쏟아냈다. 무려 7곡. 찐팬들조차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신곡들을 깜짝 공개했다.

잔나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두 개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밴드’라는 이름 대신 굳이 낡고 오래된, 심지어 어법에도 맞지 않아 보이는 ‘그룹사운드 잔나비’를 고집하는 것. 옛것의 새로운 해석이겠지만 그 해석이 무척 재미있다. 마치 뭔가에 꽂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아이들 같다.

이들에게 복고는 단순히 옛것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다듬어 내놓는 것이 아니다. 옛것에 더 오래된 옛것을 더하기도 하고, 요즘 것을 옛것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옛것을 아예 없던 것으로 돌돌 싸버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잔나비표 레시피’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사운드 콜라주’. 역시 ‘옛것의 잔나비화’를 위한 도구이자 장치로 기능한다. 뭔가 누덕누덕 기웠는데 이게 은근히 멋있다. 

최정훈이 앙코르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

최정훈이 앙코르곡을 부르고 있는 모습.


잔나비의 음악은 누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미있는 맛’이다. 만드는 사람이 재밌어 하니, 보고 듣는 이들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콜라주’한 것 같은 가사는 꽤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며 철학적이기까지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대부분의 가사들이 어쩐지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의 기억과 일상에서 끄집어 올린 것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은 ‘모든소년소녀들’이다. 무대 위에도 객석에도 이날만큼은 ‘어른인데 소년이고 소녀들인 사람들’로 가득찼다. 그리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소년 소녀됨을 기뻐하고 환호하고, 종내는 찬양했다.

마른 오징어에서 최후의 육즙을 짜내는 듯한 최정훈의 퍼포먼스도 빼놓을 수 없다. 2시간 30분간 달려야 할 것을 고려해서일까. 초반 락킹한 레퍼토리를 쏟아낼 때에는 목을 죄붙이며 다소 가는 소리를 냈던 최정훈이 중반 이후 성대 대개방 모드로 진입했다. 음원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평행 우주의 잔나비 같은 또 다른 보컬을 들려줬다.

김도형은 기타를 잘 치기도 하지만, 참 ‘열심히 치는’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5대의 기타를 가져왔는데, 어쩐 일인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팬더는 없었다. 대신 파이어버드, SG 등이 눈에 띄었는데 김도형은 아무래도 깁슨 애호가인 모양이다. 본인의 가슴과 배가 완벽히 가려지는 거대한 세미할로바디까지 들고 나와주어 고마웠다. 
대형스크린에 비친 김도형. 반전되어 왼손잡이처럼 보이지만 그는 오른손잡이 기타리스트이다.

대형스크린에 비친 김도형. 반전되어 왼손잡이처럼 보이지만 그는 오른손잡이 기타리스트이다.


깁슨 애호가답게 험버커에서 뿜어져나오는 묵직한 기타 사운드를 실컷 들을 수 있었다. 김도형의 기타에서는 어쩐지 브라이언 메이의 느낌이 난다. 까랑까랑하지 않고 둥글고 물처럼 순한데, 한 성깔은 확실히 보여주는. 최정훈의 보컬 색깔과도 궁합이 좋다. 하긴 이런 기타가 어울리지 않는 데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타 대충 쳐놓고 볼륨과 톤 노브 만지작거리는 데 시간 다 보내는 기타리스트를 선호하지 않는데, 김도형은 그런 거 아예 없다. 퍼포먼스도 상당히 멋지다. 최정훈과 2인무를 짜고 추는 것처럼 잘 어울린다.

다시 느꼈지만 ‘전설’은 역시 라이브가 제맛이다. 에스파 카리나가 피처링한 신곡 ‘사랑의 이름으로’는 최정훈의 통기타, 김도형의 할로바디 기타. 2대의 기타 반주로 들려주었다. 오리지널과는 다른 맛일 것이다. 오리지널도 궁금하다.

‘정글’은 잔나비의 개성이 짜장면 먹은 입가처럼 묻은 곡이다. ‘가사 콜라주’라는 기법이 실재한다면 이런 곡이 몇 개쯤 나올 것이다. 순식간에 떠오르는 가사를 잔뜩 모아서는 ‘가사 콜라주’ 상자에 넣고 9번 흔든 뒤 나오는 순서대로 쓴 것 같은 가사. 여기에 유쾌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입히니 ‘터지는 선샤인’의 정글이 완성되었다.

이날 잔나비는 무대 위에서 울고 웃고 쓰러지며 노래했고, 우리는 객석에서 울고 웃고 소리쳤다. 서로 다른 자리, 그러나 같은 마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잠실을 빠져나온 뒤에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우리는 이날의 잔나비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 소녀들의 가슴 속에 남아,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서성이고 있을 테니까.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