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개국이 서울에 모여 물었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제10차 문화예술세계총회 성료

AI 시대, 기후위기 시대, 공동체의 붕괴 앞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문화예술세계총회가 이 질문에 전 세계의 지성과 감성을 소환했다.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4일간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 이번 총회는 93개국 400여 명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모여 ‘문화예술의 미래 구상’을 주제로 논의의 장을 펼쳤다. 주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정병국 위원장, 이하 아르코)와 IFACCA(예술위원회 및 문화기관 국제 연합). 스톡홀름에서 열린 2023년 총회 이후 서울이 차기 개최지로 선정됐다.

● AI 시대, 예술의 질문은 더 깊어졌다
이번 총회의 중심 화두는 단연 AI였다. AI는 더 이상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창작의 방식과 문화 다양성, 지식 주권을 건드리는 문제로 부상했다.

AI 윤리학자 마이클 러닝 울프는 “AI가 위험한 이유는 똑똑해서가 아니라 어리석기 때문”이라며, 데이터 착취와 언어 표준화가 가져올 문화적 위협을 경고했다. 영어 중심의 언어모델이 원주민 언어의 복잡한 구조를 수용하지 못하고, 이는 결국 과거 식민주의적 착취와 유사한 구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은 “예술은 기술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라며, 단순한 기술 찬양을 넘어 예술만이 던질 수 있는 미래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AI의 예측은 상상력을 닮지 못한다”는 SF 창작자들의 비판적 시선도 소개됐다.

UN 문화권 특별보고관 알렉산드라 잔타키는 “문화는 특정 국가의 전유물이 아닌 삶의 방식이며 자유”라고 말하며, 위기 속에서 더욱 중요해진 문화권 보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선언을 넘어, 행동으로…서울에서 불어온 ‘문화의 바람’
이번 총회는 단순한 회의에서 벗어나 예술, 체험, 정책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국제행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람’을 주제로 한 개막 만찬과 거리 투어, 전통 잔치 콘셉트의 퍼포먼스는 참가자들에게 한국 문화의 다층적 매력을 전했다.

특히 각국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 ‘월드카페’ 세션에서는 2050년을 상상하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로드맵을 함께 설계했다. “작은 대화가 더 깊은 성찰을 만들었다”는 플루언 프림의 말처럼, 총회는 담론을 넘어 실천의 발판을 만들었다.
아르코는 문화누리카드, 청년문화예술패스, APE CAMP 등 한국형 문화정책을 소개하며 국제협력 파트너로서의 실천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총회는 유네스코와 UN의 문화 아젠다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적 계기로 평가받는다. IFACCA 이사장이자 노르웨이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틴 다니엘슨은 “서울 총회는 선언이 아닌 실행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며, “문화예술이 함께 지식과 상상을 나누는 플랫폼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폐막연설에서 정병국 위원장은 “이제는 질문을 넘어 행동의 시간”이라며, 기술과 기후위기가 만든 문화 불평등에 예술이 어떻게 책임질지를 강조했다.
서울 총회는 끝났지만, 예술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