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청 전경. 사진제공 ㅣ 경주시

경주시청 전경. 사진제공 ㅣ 경주시




조직적 커미션 의혹에 시민사회 격분
“투명성 없는 행정으로 국제회의 개최? 국민 우롱”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경주시가 최근 불거진 금품 비위 의혹으로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비판 여론에 직면하고 있다.

스스로를 ‘청렴 1등급 도시’라 자처해 온 경주시는 이번 사태로 그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시민사회는 “세계 정상들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도시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논란은 경주시 정책기획관실 예산팀 일부 공무원들이 특정 인쇄업체로부터 약 1,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내부 제보에서 시작됐다. 수사당국은 단순한 리베이트를 넘어, 인위적인 단가 부풀리기, 불필요한 공정 추가 등 정교하게 설계된 조직적 비리 정황에 대해 수사를 확대 중이다.

문제는 해당 부서가 연간 2조 원 규모의 예산을 총괄하는 경주시 핵심 부서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발생한 비위는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시 전체 청렴성과 행정 시스템에 대한 중대한 신뢰 훼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일부 직원의 부정으로 보지 않는다. “경주시가 특정 업체와 오랜 기간 유착 관계를 형성해 예산을 사유화한 것 아니냐”며, 전 부서를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경주시의 인쇄물 관련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경주시 행정 전반의 투명성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정책기획관실과 감사관실 측은 “현재 수사기관에서 조사 중이며, 일부 직원에 대해서는 징계 요구가 이루어진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은 확인이 어렵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예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경주시가 2023년과 2024년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2년 연속 1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시민들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런 평가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청렴도 평가 자체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시민은 “청렴 1등급은 국제행사 유치를 위한 겉치레 홍보용 타이틀 아니냐”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가장 큰 우려는 이번 APEC 정상회의 개최가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민사회는 “경주가 지금 할 일은 세계 정상 맞이 준비가 아니라, 행정의 기본인 공정성과 투명성 회복”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사태를 단순한 내부 비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 행정학 교수는 “관광자원만 내세워 국제회의를 치르겠다는 사고방식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지금 경주에 필요한 것은 허울이 아닌 행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철저한 쇄신”이라고 지적했다. 경주시정을 총괄하는 주낙영 시장 또한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사회는 시장의 관리 책임과 도의적 책임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회의가 아니다. 이는 개최 도시의 국가적 위상과 행정 신뢰도를 전 세계에 드러내는 무대다. 과연 지금의 경주가 그러한 국제적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시민사회는 단호하게 묻는다. “경주는 지금, 자격이 있는가”

경주 ㅣ나영조 스포츠동아 기자 localdk@donga.com


나영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