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하네” 굴착기 로미오와 픽업트럭 줄리엣의 첫 키스

인사이드 에디션 유튜브 화면캡처

셰익스피어가 무덤에서 일어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에스토니아 극단 키노테아터(Kinoteater)가 석회석 채석장을 통째로 무대로 만들고, 배우 대신 중장비들을 캐스팅했다. 이름하여 ‘로물라 야 줄리아’.

로미오는 랠리 트럭, 줄리엣은 빨간 포드 레인저 픽업트럭이다. 티볼트와 머큐쇼의 결투 장면은? 포크레인 두 대가 버킷을 맞대며 “찌릿찌릿” 긴장감을 뿜어냈다. 칼날 대신 철제 버킷, 사랑 고백 대신 엔진의 부르릉. 관객은 처음엔 웃다가도 어느 순간 진지하게 빠져들었다.

연출자 헨리크 칼메트는 줄리엣을 소개하며 “이번이 무대 데뷔작”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공동 연출자 파보 피이크는 “거대한 기계와 시의 언어가 충돌하는 지점이 흥미롭다”며 실험의 핵심을 짚었다.

인사이드 에디션 유튜브 화면캡처

관객 반응은 의외로 로맨틱했다. 한 관객은 “차들이 키스하는 장면에서 심쿵했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은 “기계인데도 귀엽다”, “사랑스럽다”며 연신 박수를 보냈다.

이 무대는 루무(Rummu)의 버려진 석회석 채석장에서 열렸고, 공연 뒤에는 엔진 냄새와 불꽃 잔해가 뒤섞여 마치 록 페스티벌 현장을 방불케 했다는 후문이다. 준비에는 10명의 드라이버, 2명의 정비사, 폭죽 전문가, 굴착기 오퍼레이터까지 투입됐다. 배우 대신 ‘팀 건설 현장’이 완벽하게 셰익스피어를 연기한 셈이다.

결론? 사랑은 언어를 초월한다. 고백은 엔진음로도 충분히 통한다는 걸, 이 ‘로물라 야 줄리아’가 증명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