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 트리포노프, 차이콥스키로 그린 피아노의 초상

다닐 트리포노프 유니버설뮤직 제공

러시아 피아니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가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내밀한 세계를 오롯이 담은 새 앨범 ‘차이콥스키’를 내놓는다. 이번 음반은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레이블을 통해 10월 3일 디지털로, 10월 15일에는 2장의 CD로 발매된다.

앨범에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소나타 Op.80 f#단조’, ‘주제와 변주곡 F장조’, ‘어린이를 위한 앨범’, 그리고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콘서트 모음곡이 수록됐다. 트리포노프는 이 작품들을 통해 차이콥스키가 품었던 가족, 어머니, 유년 시절의 기억을 음악으로 되살린다.

트리포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차이콥스키 음악원 출신으로, 2011년 제14회 국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로는 2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완벽한 테크닉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무결점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그가, 이번에는 스승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헌정 앨범을 선보인다.

정식 발매에 앞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Andante’(7월 25일), ‘어린이를 위한 앨범’ 중 ‘달콤한 꿈’(8월 22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은빛 요정’(9월 12일)이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이 중 두 곡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음악당에서 촬영된 실황 영상으로 공개됐으며, 일부 곡은 STAGE+ 플랫폼에서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다.

트리포노프는 ‘피아노 소나타 Op.80 f#단조’를 “차이콥스키의 숨겨진 걸작”이라 평가했다. 그는 “이 곡에는 젊은 날의 불꽃과 천재적 영감이 번뜩이며, 생명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한편, ‘어린이를 위한 앨범’은 차이콥스키가 14세 때 어머니를 잃은 아픔 이후 작곡한 작품으로, 유년기의 상실과 회복이 교차한다.

그가 ‘주제와 변주곡 F장조’를 처음 접한 것은 반 클라이번이 남긴 1958년의 녹음을 통해서였다. 트리포노프는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차이콥스키 특유의 민속적 색채와 변화무쌍한 변주 형식에 압도됐다”고 회상했다. 이 곡은 주제와 12개의 변주로 구성돼 있으며, 단아함과 유머, 그리고 찬란한 빛깔이 공존한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피아노 모음곡은 플레트네프가 21세에 완성한 편곡이다. 트리포노프는 “플레트네프는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를 창조했다”며 “동화의 환상과 무곡의 생동감을 그대로 간직한 보석 같은 작품”이라 설명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우리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차이콥스키의 인간적인 면모를 마주할 수 있다”며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에게 있어, 이 음악은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말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