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이상일 “애니 중심 日영화, 사람이 사람을 보는 가치 되새길 수 있어 기뻐”[인터뷰]

사진제공｜미디어캐슬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이 일본 영화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19일 국내에도 개봉하는 영화 ‘국보’를 통해서다.

‘국보’는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 일본 전통 예술 가부키의 인간 국보 반열에 오르기까지의 치열한 과정을 그린 작품. 일본에서는 관객 1200만 명을 넘어서 170억 엔(160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기록하는 등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을 찾은 이상일 감독은 “단순히 가부키를 다룬 영화가 아니며 전 세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인의 삶을 그린 작품”이라고 ‘국보’를 소개하며 우리 관객의 마음에도 깊이 다가가기를 기대했다.

O“연기자들 가부키 훈련만 1년 반”

주인공 키쿠오는 가부키 배우 가운데서도 여성 캐릭터를 전담하는 남성 ‘온나가타’다. 가부키 소재의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을 때부터 ‘온나가타’를 서사의 중심에 뒀다는 이 감독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가진 그들을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 온나가타 연기자를 만나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 있어요. 단순히 여성스럽다는 게 아니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無性)의 느낌이죠. 무대뿐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도 몸짓과 태도,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죠.”

주인공 키쿠오 역을 맡은 요시자와 료는 ‘국보’를 위해 1년 6개월 동안 가부키를 배웠다. 어린 시절 키쿠오를 연기한 아역배우 쿠로카와 소야까지 4개월간 가부키 연습에 매진했다. 감독은 이들의 노고를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속에 담아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듯 긴 영화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죠. 젊은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가부키를 다루고 있으니 우려 또한 있었어요. 하지만 한사람의 인생과 예술을 담아내기 위해선 이 정도 시간은 필요했어요. 시사회 이후 반응을 확인하고 난 뒤엔 확신이 생겼고 무엇보다 애니메이션 중심인 일본 영화계에서 ‘사람이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경험’을 되새길 수 있어 기뻤어요.”

영화 ‘국보’ 스틸, 사진제공｜미디어캐슬

O“한국 영화계 침체기 슬프다”

이번 방한에서 이 감독은 봉준호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도 했다. 그는 봉 감독이 연극적 전통 예술을 영화에 담아낸 자신의 노력과 창작 과정을 깊이 이해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일본에서 1000만 흥행 소감을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흥행 전문’ 이신 봉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봉 감독님께선 ‘내가 제임스 카메론(‘아바타’ 감독)을 이겼다!’고 말하라고 하시더군요.(웃음)”

이 감독은 봉준호를 비롯해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등 우리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들을 언급하며 한국 영화의 자생력과 창작력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으로 최근 OTT 중심으로 흐르는 국내 영화계 현실에는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 영화계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죠. 지금은 어려운 시기일지라도 한국 영화에는 다시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한국 영화의 강점을 배워야 한다고 느꼈기에 최근 부침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어요.”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