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바이포엠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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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 없이도 섹시하고, 야하지만 결코 저급하지 않다. 19금 유머에 정신없이 웃다가도 어느새 가슴이 묵직해진다. 하정우식 ‘대화극’의 정점이자, ‘감독 하정우’의 최고작으로 자리매김할 영화 ‘윗집 사람들’ 이야기다.

12월 3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26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하정우의 네 번째 장편 연출작 ‘윗집 사람들’은, 연출작마다 ‘찰진 말맛’을 강조해온 그의 장기가 가장 밀도 높게, 가장 폭발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앞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10회 런던아시아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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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층간소음을 매개로 만난 두 부부(공효진·김동욱, 이하늬·하정우)가 단 한 끼의 저녁 식사에서 벌이는 예측불허의 대화극으로 전개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서 알 수 있듯, 식탁 위에서 오가는 대화는 충격적일 정도로 거침없다. 결혼생활, 성적 취향, 부부 관계의 은밀한 진실까지, 이들은 사적인 영역을 스스럼없이 들추어내며 팽팽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구축한다.

O ‘노출 제로’ 섹스 코미디의 완성…저급함을 피한 텐션의 힘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노출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캐릭터들의 성에 관한 솔직한 대화만으로 야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완성해낸다는 것이다. 이는 대사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정우식 유머의 장점이 극대화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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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대담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많은 19금 코미디가 빠지는 ‘저급함의 함정’을 피하며 수준 높은 텐션과 경쾌한 리듬감을 유지한다. 섹스와 부부 관계를 거침없이 다루면서도 유쾌하고 세련된 톤을 지켜낸 덕에, 영화는 ‘19금 코미디의 새로운 전범(典範)’을 제시한다. 일부 유럽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농익은 대화극을 한국 영화에서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점도 의미 깊다.

하지만 ‘윗집 사람들’은 단순히 웃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성생활 단절을 겪는 아랫집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부부의 소통 부재, 더 나아가 인간 관계에서 느끼는 근원적인 고립과 외로움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한바탕 웃음에 취해 있다가도 후반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성찰과 감동은 관객의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웃음이 컸던 만큼, 뒤늦게 밀려오는 뭉클함은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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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하정우 DNA 총집합…영화 곳곳에 새겨진 감독의 시그니처

‘윗집 사람들’은 감독 하정우의 취향과 예술적 자의식이 가장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유일한 배경인 공효진·김동욱 부부의 집에는 미술작가로 활동 중인 하정우의 작품이 걸려 있어 하나의 프라이빗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챕터 전환마다 등장하는 하정우의 직접 그림 삽화는 극에 비현실적이고 동화 같은 결을 더한다.

공효진의 직업을 미대 강사로, 김동욱의 직업을 독립영화 감독으로 설정한 것 역시 하정우 감독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투영된 결과다. 여기에 하정우가 출시한 와인이 소품으로 등장하는 장면, 공효진과 하정우가 함께 출연했던 전작 ‘러브 픽션’이 재치 있게 언급되는 순간까지 더해져 영화는 그의 예술적 DNA를 응축한 ‘하정우 컬렉션’처럼 느껴진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