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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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3일 서울 성북구 반크 보문 사무실에서 ‘글로벌 AI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양 기관은 지난 9월, 문화유산 보호·활용 및 연구 성과 홍보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특히 협약 당시 ‘AI 문화유산 홍보대사 양성사업’을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반크의 국가정책제안플랫폼 ‘울림’을 기반으로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한국 문화유산 관련 콘텐츠 속 오류와 왜곡을 바로잡는 한편, 이를 토대로 청소년·청년 디지털 홍보대사를 양성해 전 세계에 한국 문화유산의 올바른 가치를 알릴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세미나는 이러한 협력의 연장선에서, AI 시대에 한국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알리는 전략과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AI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반크는 기술적 주권 확보를 넘어, AI 속에 반영되는 한국의 역사·문화·정체성까지 함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보유한 방대한 연구·보존 데이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주권’을 담보하는 핵심 자산으로, 이 자료가 생성형 AI 학습에 제대로 반영될 경우 한국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가 세계에 정확히 전파되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미나에서는 권소영 반크 연구원이 ‘AI 한국 역사·문화 왜곡 현황과 원인 및 경로’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권 연구원은 ▲한국 문화유산 및 역사 왜곡 사례 분석 ▲정보 편향의 구조적 원인과 경로 ▲디지털 제국주의의 확산과 대응 필요성을 중심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텍스트에서 드러난 왜곡 사례들을 제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경복궁이 일본 오사카성과 혼동되어 묘사되거나, 석굴암의 불상이 동굴 바깥에 놓여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등 실제와 다른 이미지가 빈번히 생성되고 있었다. 

권 연구원은 “이러한 오류는 단순한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AI 학습 데이터에 이미 내재된 편향과 왜곡의 결과”라며, “AI가 학습하는 해외 교과서, 백과사전, 언론, 웹사이트, SNS 등 원천 자료 속에 한국 관련 오류가 광범위하게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이 같은 정보 불균형이 AI가 세계 시민에게 보여주는 한국의 모습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이는 곧 21세기형 디지털 제국주의의 일환”이라며 “과거에는 무력으로 영토를 점령했다면, 지금은 정보를 지배함으로써 문화적 우위를 점하는 방식으로 패권이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요 생성형 AI(ChatGPT, Gemini, Copilot, Grok 등)에 한국 문화유산 이미지를 요청해 조사한 결과도 공개했다.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네 유물 모두 거의 동일한 이미지로 생성되어, AI가 개별 유산의 고유한 특징을 학습하지 못한 채 단순화된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국보이자 APEC 로고의 모티브로 활용된 얼굴무늬수막새 역시 실제와 전혀 다른 형태로 재현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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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그는 주요 생성형 AI가 아프리카를 묘사할 때 빈곤·분쟁·질병 등 부정적 이미지에 치우친 시각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크는 글로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주요 AI 기업과 플랫폼에 아프리카 관련 데이터의 왜곡 시정과 균형 잡힌 학습 알고리즘 구축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표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주도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며, 그 핵심으로 ‘글로벌 소버린 AI’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이는 각국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보 주권을 확보하고, 국제사회가 협력해 문화 다양성이 존중되는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이 과정에서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연구 데이터와 전문성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크 청년연구원들이 AI 시대 문화유산 주권 강화를 위한 구체적 실행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이세연 청년연구원은 “AI가 문화유산의 기본 정보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러한 오류의 근본 원인을 ‘참조 가능한 표준 데이터셋 부재’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별 핵심 문화유산 표준 데이터셋 구축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그는 지역 대표성과 외국인 노출 빈도를 기준으로 핵심 문화유산을 선정하고, 명칭·시대·위치 등 기본 정보와 AI가 반영해야 할 핵심 시각 요소 및 대표 이미지를 포함한 표준 데이터셋을 구축·공개함으로써, AI의 재현 정확성을 높이고 사용자들이 명확한 기준에 따라 오류 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오류 발견 시 명확한 기준에 따라 시정 요청이 가능해지고, AI는 문화유산의 정체성과 차별적 특징을 보다 정확히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백시은 청년연구원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AI 기반 이미지 검색 서비스 ‘문화유산 찾아-줌(ZOOM)’을 언급하며, 이를 확장해 ‘AI 속 문화유산 왜곡 모니터링 센터’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는 반크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협력해 주요 생성형 AI 모델을 대상으로 텍스트·이미지·지도·무형유산 등에서 발생하는 왜곡 사례를 유형별로 분석하고, AI별 오류 패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왜곡 위험도가 높은 문화유산을 우선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지속해서 축적함으로써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을 AI 시대 글로벌 문화유산 정본 데이터 허브로 발전시키자는 구상이다.

김예래 청년연구원은 반크가 제작한 AI 오류 검증 숏폼 영상 사례를 소개하며, AI 오류를 대중이 직접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홍보 캠페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글로벌 AI 문화유산 홍보대사’ 프로그램과 연계해, 홍보대사들이 발굴한 오류 사례를 주제별로 구성한 「문화유산 AI 팩트체크 리포트」 시리즈를 정기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인스타그램 릴스·유튜브 쇼츠 등에서 [오답 제시 → 오류 설명 → 정확 정보 제시] 구조로 전개해 AI 정보 신뢰 문제를 대중이 체감할 수 있는 교육형 캠페인으로 발전시키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전문가가 직접 AI 오류를 해설하는 ‘1분 릴스 포맷’을 통해 현장감 있는 교육·홍보 모델로 확장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문화유산의 ‘발견부터 복원까지’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해온 연구원이 이제는 AI 시대의 ‘디지털 복원가’로서 온라인상에서 AI가 왜곡된 문화유산 정보를 바로잡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양 기관이 협력해 AI 문화유산 재현을 위한 모범 프롬프트 기술을 공동으로 제시한다면 AI 시대 문화유산 보호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은경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연구기획과장은 “AI 기술이 문화유산의 연구·보존·활용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정확한 데이터 구축과 표준화는 곧 국가 문화유산의 주권을 지키는 핵심 과제”라며, “반크와 함께 AI 기반 문화유산 데이터의 신뢰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차원의 디지털 문화유산 거버넌스를 선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구승현 반크 연구원은 “AI 3대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이야말로, 자국의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지키고 세계에 공유함으로써 AI 시대 인류문화의 다양성과 균형을 이끌 책임이 있다”며, “한국이 문화유산 보존과 기술 혁신을 결합한 ‘AI 문화유산 공헌 모델’을 만들어 세계에 확산시킨다면, 이는 기술 패권을 넘어 문화로 공헌하는 새로운 AI 강국의 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세미나는 AI 시대 정보 왜곡의 위험 속에서도 한국의 문화유산이 정확히 인식되고 공정하게 재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