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장남자’양정승“제화장한모습귀엽던데요”

입력 2008-02-09 10: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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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사나이’가 여장(女裝)을 했다면? 성전환이나 코스프레는 아니다. 앨범 콘셉트라고 주장하는 작곡가 겸 가수 양정승을 최근 서울 강남의 라마다서울 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평소’ 모습으로 진행됐지만 이 남자의 진짜 ‘속내’가 궁금했다.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 아이비의 ‘바본가봐’, KCM ‘은영이에게’ 등 작곡가로 10년 넘게 ‘잘 살아온’ 양정승은 한숨을 들이쉬고 깍지를 낀 채 그동안의 프로듀싱 과정을 설명하면서 실타래를 풀었다. 그는 “곡을 주기 전까지 가수를 1달에서 몇 년 동안 관찰하며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찾아낸다”며 “그 결정이 매번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운이 좋아서인지 많이 맞았다”고 말했다. “가수를 꿈꿔온 제 앨범을 기획하면서 저만의 특색을 고민해봤어요. 말투나 평소 모습은 여느 남성과 다르지 않지만 혼자 있을 때는 감성이 풍부하고 음악에 대한 여린 감성이 살아나는 데 포인트를 잡았어요.” 그는 앨범 재킷을 찍고 자신이 만든 음반기획사 엠플레이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를 불러 모았다. 정상적인 사진과 여장한 사진을 함께 놓고 ‘내가 이걸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사진을 10분 정도 뚫어지게 보니 후자 쪽으로 눈길이 갔다고.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 변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음 속으로만 갖고 있다가 이제야 확신한 겁니다. 음반 시장도 어렵고 큰 차별화를 두기 위해 하이톤 창법과 호흡으로 노래를 불렀죠.” ●“화장한 날? 너무 잘 어울리더라” 기획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실제 화장할 당시로 시간을 돌렸다. 양정승은 “죄송한 이야기지만 너무 잘 어울려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놀랐다”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닭살이 돋아야 하는데 오히려 귀여웠다. 제 색깔을 몰랐다가 그날 처음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함께 나타난 가수 강철은 “디테일한 부분이 묻어나는 음악이라 여성적인 부분을 심하게 강조해도 되겠다며 (여장을) 적극 찬성했다”며 “양정승을 잘 모르는 대중이 들을 때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앨범을 들어보면 여성인지 남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미성이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이날 인터뷰가 ‘커밍아웃’은 아니었다. 화장은 앨범 재킷 찍는 날 처음 해봤으며 자신은 전형적인 남자에 여자를 밝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사랑을 갈구한다고 강조했다. 3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를 작년까지 못 잊을 정도로. 이때 나온 노래가 아이비의 ‘바본가봐’와 KCM의 ‘은영이에게’ 등이었다(여자친구 이름이 “은영이었느냐”고 물었다가 “그 질문은 100번도 넘게 들었다. 은영인 아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수가 된 그에게 새해 포부를 묻자 “한 장르의 색깔을 오래 지속하면서 여장남자, ‘제 노래를 들으면 한이 느껴진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 작곡가 양정승이 되기까지 창을 하는 할아버지,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각종 현악기를 다루시는 아버지와 성당에서 반주자로 활동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더 이상의 딴따라는 안 된다”며 집안의 반대로 음악과 거리를 둬야만 했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다. 타고난 청음 능력 덕분에 음악만 듣고도 음을 따고 피아노로 칠 수 있었다. 여동생이 피아노과에 간다고 사준 피아노를 아버지 퇴근 시간 직전까지 독차지했다. 어느 날 생각나는 대로 곡을 쓰고 연주를 하던 중 어머니가 뒤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준 것이 작곡가로 가는 첫 걸음이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서울 압구정에서 여의도까지 걸으며 수많은 기획사에 제출했지만 답이 없었다. 다행히 당시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한영애, 김현철, 이소라 등이 있는 동아기획에서 막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음악병으로 입대하면서 그의 진로는 작곡가로 굳어졌다. 병장 시절 먼저 제대한 고참 구본승에게 ‘시련’을 선물해주면서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이후 GM기획 김광수 대표(현재 엠넷미디어 대표이사)를 만나 신인을 만들기로 했고 이때 나온 ‘신인’이 바로 조성모였다. ‘투 헤븐’, ‘불멸의 사랑’ 등 완성된 노래에 보컬만 씌우는 상황에서 조성모는 일주일 만에 녹음을 마쳤다. 가수를 준비하려던 자신의 장점을 흡수하고 특유의 창법을 만들어낸 것. “성모 때문에 작곡가로 안 갈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제작자에게 전화가 쏟아졌어요. 언젠가 가수를 하고 싶었고 아이템을 누구에게 줄 생각도 못했는데 저와 성격이나 말투가 비슷한 성모가 이걸 가져간 거죠.” 그의 예명은 키로이 와이(Kiroy Y). 아이비를 프로듀싱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식상하다며 영화 ‘트로이’에서 착안해낸 것. “가수도 예명 쓰는데 제가 과감하게 먼저 바꿨습니다.” 지금까지 80여 가수를 키운 작곡가이자 음반기획사(엠플레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양정승은 “앞으로도 신인을 맡아 어떻게든 띄워서 이슈를 만들고 싶다. 이미 뜬 가수에게 곡을 주는 것은 쉽기 때문”이라며 “지금껏 해온 것의 10배는 더 할 것”이라고 답했다. 스포츠동아 정기철 기자 tom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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