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투쟁’엄마vs‘밥투정’아이

입력 2008-04-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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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자랑이 아니지만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빨래나 청소 등 다른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았으니 내가 요리를 싫어하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된 후로부터 지금까지 17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요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벌여놓는 것보다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고 창조하는 것보다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며 먹는 행위보다 다른 행위들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요리에 들이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내겐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말은 절대 요리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하지만 나는 요리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식사대용 알약이 있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약이 나오길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렇게 먹는 것에 관심과 취미가 없는 사람, 사실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게 살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누구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사람이 여자일 때, 결혼을 했을 때, 그리고 엄마가 되었을 때, 이것은 사회문제가 된다. 예전 한 방송 시사프로그램의 ‘밥 안하는 엄마, 외식으로 크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의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엄마로 규정되어 있다. 엄마는 요리에 취미가 있든 없든 잘하든 못하든 아이를 낳은 이상, 요리를 해서 아이를 잘 먹여야만 엄마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를 낳았던 나는, 요리 자체에 취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17년 동안 아이를 굶기지 않고 심지어 아이로부터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17년이나 해왔으면 이력이 붙고 내성이 생길만도 한데, 아직도 나는 부엌에 들어가기가 싫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배달업체에서 국과 반찬을 시켜 먹어 보고 있다. 가난한 내게는 큰 부담이지만 일단은 부엌에서 해방된 느낌이 꽤 괜찮았다. 그런데 아이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눈치인데다가 이제 엄마가 요리를 안 해줄 것이라는 사실이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나보다. 이 충격과 공포, 그리고 ‘요리를 안 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아이는 채팅 프로그램 대화명에 표출하였다. ‘맛있는 식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라는 아이의 대화명에 ‘이 세상에서 밥하는 게 제일 싫어’라는 대화명으로 응수하는 엄마. 과연 누구의 대화명이 먼저 바뀔 것인가. 윤 재 인 비주류 문화판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프리랜서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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