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 20년만에지킨청혼의약속

입력 2008-04-22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실감하며 저희 부부도 어느덧 결혼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다지 예쁘지도, 늘씬하지도 않은 그녀였건만… 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나 봅니다. 그 당시 제 눈에는 아내가 천사처럼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톡톡 쏘며 ‘싫다’고 말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청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청혼을 듣고, 이 여자가 바로 대답을 안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랑 결혼하면 우째 해줄낀지, 혹시 생각해 본 적 있는교?”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랑 결혼만 해주신다면, 지가 평생 행복하게 해드리겠십니더. 눈에 눈물 한 방을 안 나오게 해 주겠십니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는 말이,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기 아니라예! 그 대답은 너무 무성의 합니더!”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얼른 “그… 그라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꺼? 평생 물에 손 한번 안 담그게 해 주겠십니더”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뭐라꼬예? 그럼 남자가 돼서 돈도 안 벌러 가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설거지하고 빨래하면서 그렇게 살림만 해 줄 기란 말입니꺼?” 하면서 팽 토라지는 겁니다. 아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준다고 해도 화를 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제 청혼을 받아줄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저는 그녀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지랑 결혼해 주시면요. 다른 때는 몰라도, 일 년에 한 번, 결혼기념일만큼은 둘 만의 여행을 가겠십니더! 어디든지 원하는 곳으로 결혼기념 여행을 가겠십니더!” 하고 청혼했습니다. 그 얘기에 얼굴이 환해진 그녀, 드디어 결혼승낙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대로 결혼 1주년이 됐을 때 아내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몸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결혼 2주년 그 때는 아내가 둘째를 가져서 입덧이 너무 심해서 차 근처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아내가 내심 서운해 했지만 별 수 있습니까? 입덧이 심한건 제가 어찌 해줄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결혼 5주년! 그 때는 꿈에 그리던 집 장만을 하느라 결혼기념일을 아예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결혼기념일에 약속한 여행은 떠나지도 못 하고, 저희 부부가 결혼 17주년을 맞이할 때였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좀 더 멀리, 둘만의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한껏 들떠있었는데… 여행을 며칠 앞두고 제가 치질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또 못 갔습니다. 이렇게 각종 사건 사고들로 가지 못했던 결혼기념일 여행, 그렇게 올해로 20년을 맞게 됐습니다. 이제는 여행 대신 매년 삼겹살 파티를 하자고 아내와 다시 약속을 했습니다. 설마! 삼겹살 파티 할 때 갑자기 마트의 삼겹살이 모두 바닥이 난다거나, 돼지들이 모두 이민을 떠난다든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올해부터 앞으로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삼겹살로 파티하면서 그렇게 조촐하게 보내야겠습니다. 경남 김해|이재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