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웃으면객석은‘웃음바다’…‘개그야’카메라감독들

입력 2008-04-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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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으로웃는‘최초의시청자’…“나부터웃겨봐”
개그맨은 무대에서 웃음을 주고 시청자는 TV를 통해 그들의 개그를 감상한다. 하지만 개그맨과 시청자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없으면 어떨까. 사는 동안 내내 숨을 쉬지만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산소처럼 방송국 카메라 감독들은 재미있는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묵묵히 현장을 지킨다. MBC 공개 개그프로그램 ‘개그야’에는 총 7대의 카메라가 투입된다. 중앙에 4대의 카메라가 풀 샷(full shot, 등장인물 전원을 화면에 담는 기법)부터 원샷(one shot, 한 인물만 집중적으로 담는 기법)을 맡는다. 객석 좌우 2대의 ENG카메라는 관객의 반응을 촬영하고, 지미집(크레인 같은 구조물에 설치한 카메라)은 높은 지점에서 장면 전환용 그림을 담는다. 젊은 개그 프로, 20년 이상 베테랑이 찍는 이유? ‘개그야’의 카메라 감독은 81년 입사한 27년 경력의 베테랑부터 2007년에 들어온 신입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무대 정면에 위치한 4대의 카메라는 13년∼27년차 중견 감독들이 맡는다. 4명 평균 경력이 22년 이상이다. MBC 영상미술국의 김창배 스튜디오 중계촬영부 차장은 “가요 프로그램은 최신 감각이 필요해 젊은 인력으로 채우지만 개그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관록, 순발력, 상황 대처 능력이 더욱 중요해 베테랑들이 맡는다”고 말했다. 2004년 입사한 황석만 씨는 지미집으로 코너 사이별로 카메라를 돌리고, 2005년과 2007년에 각각 입사한 하림, 김선기 씨는 객석 양쪽에서 젊은 관객층의 웃는 모습을 포착한다. “PD의 콜과 현장의 필이 어우러져야” 김 차장은 “드라마는 콘티 위주로 진행되지만 공개 개그프로그램은 애드리브가 있어서 콘티대로 찍기 어렵다”고 말했다. 녹화 전 리허설에서 7명의 카메라 감독들은 개그맨들의 동선과 리액션을 파악한다. 그럼에도 실제 녹화에서 뜻하지 않게 넘어지거나 웃는 등의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PD도 연습한 대로 녹화하는 것보다 카메라 감독의 역할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나카펠라’ 정종철의 표정이 재미있을 때에는 PD의 사인이 없어도 카메라 감독들이 줌인을 한 장면을 쓴다. 부조정실에서 지켜보는 PD의 콜(사인)과 현장 카메라 감독의 필(감각)이 조화를 이뤄야 프로그램이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는 것이다. “객석 썰렁할 때가 가장 힘들어” 리허설 2시간, 본 녹화 2시간 내내 카메라 감독들은 선 채로 모니터와 무대를 번갈아가며 체크하고 귀로는 PD의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육체적 노동보다 관객의 반응이 가장 조심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개그야’ 카메라 감독의 수장인 이무영 부국장은 “‘개그야’가 녹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관객이 있어서 사실상 생방송이나 마찬가지”라며 “원하는 장면을 놓쳤다고 다시 찍을 수가 없다. 수백 명의 관객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81년 입사한 신선희 부장은 “오후 4시에 카메라 리허설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본 녹화 전에 반드시 이를 닦고 들어간다. 즐기러 오신 많은 관객에게 냄새가 나는 것도 조심스럽다”고도 했다. 85년 입사한 박삼열 부장은 “서서 일하는 것보다 썰렁한 객석이 느껴질 때가 가장 힘들다. 반대로 시청률이 높고 객석 호응이 좋으면 서서 일하는 우리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짝 웃으면 객석은 폭소” 개그맨들이 무대에 올라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카메라 감독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잘 찍어달라는 ‘애교’이자 방송 선배들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개그맨 박준형은 “신인 때부터 감독님들에게 인사를 해왔다. 함께 하는 가족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감독은 촬영이라는 본업 외에 가장 먼저 개그맨들의 개그를 감상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박삼열 부장은 “80년대 ‘청춘만만세’ 시절부터 카메라 감독 사이에서 전해내려온 말이 있다. 카메라 감독이 웃으면 그 코너는 성공한다는 것이다”면서 “우리는 스태프이기 이전에 제1의 시청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개그맨의 움직임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크게 웃을 수는 없지만, 리허설에서 살짝 웃어주면 본 녹화에서 관객의 폭소가 터진다”고 말했다. 정기철 기자 tom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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