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7년도에 결혼해서 올해로 결혼 1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부부싸움이라고는 딱 3번 밖에 안 해봤습니다. 그 3번의 부부싸움이 모두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부부 싸움은 큰아들 준모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아이 낳고 좀 있으려니까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안 그래도 긴 생머리라 머리카락이 뱀처럼 길었습니다. 그 긴 머리카락이 집안 여기저기에 굴러다니니까 참 보기가 싫었습니다. 게다가 아들이 업혀서 제 머리를 자꾸 잡아당겼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곧장 미용실로 달려가서 커트머리로 짧게 자르고 왔습니다.
그 날 저녁, 퇴근해서 온 남편이 제 머리를 보자마자 난리를 쳤습니다. “니 그 머리가 그기 다 뭐꼬?”라고요. 저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렇지 않게, “응∼ 나 오늘 낮에 요∼ 앞 미용실 가서 커트하고 왔어. 진작 이렇게 할 걸 괜히 고생했잖아∼ 어때 자기야? 나 예쁘지?” 하고 남편 앞에서 한바퀴 돌기까지 했습니다.
남편이 기가 막힌다는 듯 “니는 머슴아도 아니고 우째 머리를 그래 싹뚝 자르고 왔노, 아휴∼ 도로 갖다 붙이지도 몬하고 내 이번 한 번만 용서하니까 애 크면 꼭 다시 기르는 기다∼”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다 날 사랑해서 그런 거다 생각하고 그 정도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더 커서 회사 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간 저희는 두 번째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원 부인이 저를 보면서, “준모 엄마는 얼굴도 길고 키도 큰데, 왜 항상 긴 생머리만 하고 다녀? 파마 한 번 해봐∼”라고 설득했습니다.
제가 “남편이 지금 머리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요즘 남편 허락 받고 머리하는 여자가 어디 있어? 남자들도 긴머리 어쩌고 하지만 막상 마누라가 머리 예쁘게 하고 오면 다들 좋아하더라∼ 내가 애 봐줄 테니까 가서 파마하라”며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전 20대 초반에 딱 한번 해보고, 그 후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파마를 하게 됐습니다. 미용실 아주머니가 왜 이렇게 머리 관리를 안 했냐고 호들갑을 떨면서 해준 머리가 바로 세팅파마였습니다.
그 파마가 의뢰로 제게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거울을 봤는데 그 속에 비친 제 모습이, 제가 봐도 예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면서 “빠∼마? 누가 니보고 빠마하라고 하드노? 아니 도대체 그 머리를 왜 그냥 못 두는 긴데∼” 이러면서 소리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당신 상사, 김 과장님 부인이 나보고 애까지 봐줄 테니까 빠마하고 오라고 하더라”라고 했더니, 남편은 아무소리 못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작년, 부부동반 송년모임 때 저희 부부는 3번째 부부싸움을 하게 됐습니다. 저녁 약속에 맞춰 잘 꾸며야 하는데 입고 나갈 옷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머리도 언제하고 안 한 건지 부스스하고, 파마도 다 풀리고 너무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받은 5만원 파마이용권으로 파마를 하고 왔습니다. 매번 2만원 짜리 파마를 했는데, 5만원 짜리 파마를 하니까 너무 고급스럽고, 귀여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역시나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면서 송년모임 내내 저는 쳐다보지도 않고, 뚱∼ 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송년모임 마지막 행사로 새해 소원 3가지 말하는 게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손을 번쩍 들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내 소원은 첫 번째∼ 준모엄마 앞으로 머리 자르지 말 것∼ 둘째∼ 파마 하지 말 것∼. 셋째∼ 지발 말 좀 들어라! 마지막 경고다. 알겠나?” 했습니다. 행사장 안에 모인 사람들이 웃고 난리가 났고, 전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긴 생머리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이상형이 탤런트 고현정 씨인데, 그 긴 생머리가 너무 예쁘다고 합니다. 요즘 고현정 씨 짧은 커트머리로 ‘보이시’ 하게 나오던데, 왜 그건 못 보는 건지… 하여튼 남편이 이러는 거, 이게 다 제가 예뻐 보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대구 동구 | 박미자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