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식객!그래이맛이야”

입력 2008-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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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통해본맛의기준
얼마전 멸치조림을 갖고 남편과 가벼운 논쟁이 있었다. 나는 간장에 바싹 졸인 후 물엿까지 둘러 짭잘하고 달달하고 바삭하면서 찐득하기도 한 것이 맛있는 멸치조림이라고 하고, 남편은 단 맛이나 짠 맛이 아니라 다시마 우린 물에 찌듯이 졸여 멸치 맛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촉촉한 멸치조림이 맛있는 것이라고 한 것이었다. 이것을 스타일의 문제, 취향의 차이로 치부하기에 우리의 대화는 너무 멀리 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맛있다는 거야?”로 묻고 “휴우, 맛도 모르면서!”로 대답하니 이것은 ‘맛’의 문제였다. ‘먹을 수는 있지만 맛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된 얘기였으니 그 끝으로는 어울리는 결론이긴 했지만 입맛이 썼다. 사실 ‘맛있다’의 보편타당한 기준 같은 것은 없다. 내가 맛있다고 항상 남도 맛있을 수 없고, 남이 맛있다고 언제나 내 입에도 맛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식당들, 솜씨 하나로 지중해 섬 하나쯤 장난 삼아 살 수 있게 부자가 된 쉐프들이 만들어낸 ‘맛있다’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요즘 인기가 높은 SBS 드라마 ‘식객’의 음식 경합 장면을 보면서도 의구심은 꼬리를 물었다. ‘저 음식을 누가 먹느냐에 따라 성찬의 음식이 맛있을 수도, 봉주의 음식이 맛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들이 존경하는 오숙수의 입맛이니 그 판결에 수긍할 수 있겠지만 다른 스타일의 음식을 평생 맛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은 어떨까. 예를 들어 대장금 최고상궁이었던 정상궁이 먹어봤다면…. 그녀는 민어뼈를 우린 국물에 부레와 지느러미를 섞어 채운 만두를 띄운 후 17년 된 어머니의 간장을 곁들인 민우의 요리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또, 성게알과 함초를 넣어 속을 채운 부레 요리 보다 오히려 부레회덮밥에 내 입맛이 다셔지는 건 다만 평민의 입맛이기 때문이었을까? 원론적인 접근을 한다면 최고의 재료를 써서 정확한 조리법과 딱 떨어지는 간으로 충심을 담아 요리하면 누구나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그 요리는 어느 혀라도 만족하게 할 것이다. 거기에 유연성을 가지고 입을 열면 바삭하지 않은 멸치조림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 결국, 혀처럼 정직한 게 없어서 맛은 숨길 수 없다는 북구의 속담은 철 지난 얘기인걸까? 취향과 습관도 환경도 모두 주머니에 넣어 놓고 오로지 혀끝의 미봉만으로 맛을 판단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래서 역설적으로 ‘식객’은 흥미진진하다. 누가 봐도 맛있을 음식을 놓고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지만, 이것이 훨씬 더 맛있다’라고 결론을 내는 드라마의 구성은 재미없을 수가 없다. 어쩌면 ‘식객’을 다 보고 나면 맛이 있다는 것의 명명백백한 기준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조 경 아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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