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흔해빠진칵테일은싫다섹시한그녀의쿨한변명

입력 2008-06-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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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에 가는 기분, 딱 그랬다. 삶의 한때를 함께 보낸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으로 그녀들을 만났다. 개봉 다음날, 서울 강남의 한 극장은 그녀들을 만나러 온 친구들로 가득했다. 귀에 익숙한 오리지널 시그널이 경쾌한 음악으로 바뀌고 함께 공유했던 과거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후 4년을 떨어져 살아온 그녀들이 나타났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노화도 평등하게 오는 것, 캐리의 손등은 이제 자글자글했고 미란다의 입술에는 세로 주름이 가득했다. 사만다는 믿어지지 않는 양감의 아랫배를 가지고 나타났고, 샬롯의 눈가에도 까치발 주름이 생겨있었다. 그 자연스럽고 편안한 변화들이 그녀들과 오랜만에 이뤄진 상봉을 더욱 반갑게 만들었다. 전 세계 여자들이 기다려온 영화 ‘섹스 앤 더 시티’가 개봉했다. 극장에서 그토록 큰 소리로 영화 내용에 반응한 적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이후 처음이었다. 빅이 빵을 사듯 펜트 하우스를 사줄 때, 감출 수 없는 부러움은 개그 프로 방청객보다 큰 소리로 약속한 듯 터져나왔다. 무식한 스포일러가 될까 차마 말할 수 없는 절정의 장면에서는 각각의 취향이 담긴 욕설들이 솟구쳐 올랐다. 여전히 브랜드 이름이 창궐하고 비록 눈깜짝할 사이였지만 남자의 성기가 그대로 보이고 꽤 과감한 섹스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는 것으로 누가 봐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정체성을 소리내지 않고 주장하고 있었다. 많은 여자들이 열광했던 그녀들의 스타일은 어쩐지 과해졌고, 그래서 따라해보고 싶은 패션보다는 딴지 걸고 싶은 스타일링이 눈에 걸렸다. 마음을 만지던 캐리의 독백이 그저 그녀의 이야기, 영화 속 이야기로 머물고 만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관객들과 함께 젊은 어느 시절을 관통했던 ‘그녀들’이었다. 그녀들이 차리고 나선 바 장면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칵테일인 코스모폴리탄. 보드카에 시트론, 크렌베리 등으로 맛을 낸 이 칵테일을 마시며 그녀들은 말한다. “아,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었을까?” “흔해져서 안 먹었지!” 역시 그녀들! 입맛이 바뀌었다거나, 다른 게 좋아졌다는 변명 대신 속이 다 후련하고 어느 한 군데는 슬쩍 찔리는 기분이 드는 말로 대답했다. 흔해졌지만 맛있는 그 칵테일로 앞으로의 50년을 건배하며 그녀들은 다시는 보여주지 않을 그들만의 시즌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즐겁기 위해 먹었다면 누군가 따라 먹는 게 왜 싫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게 흔해지는 건 왜 싫을까? 남이 모르는 걸 혼자 좋아해야 더 좋은 걸까? ‘먹는다’는 것은 단지 혓바닥 위의 미봉과 식도, 위장의 기쁨을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다. 옷을 입고, 구두를 골라 신고 백을 메는 것처럼 자신만의 취향, 남다른 스타일을 과시하는 쪽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흔해져서 싫어진 음식, 내가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남이 내가 먹는 것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좋아했던 걸까? 그런 이유로 싫어진 음식들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녀들을 그만 배웅하지 못했다. 조 경 아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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