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언제나영화처럼]나는인어공주

입력 2008-11-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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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맞지 않는 옷을 정리하던 주말. 옷상자 바닥에서 책 한 권을 찾아냈다. 책갈피에 쓰인 문구를 보니 대략 대학 3학년 때 구입한, 무슨 연유로 샀는지 모를 추리소설이었다. 주섬주섬 옷 정리도 꽤 시간이 걸릴 텐데 그 추리소설을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흥미진진한 스토리였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용은 좀 아귀가 안 맞는 듯한 느낌. 그 소설은 동화를 재구성해 하나의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뭐, 그런 스토리였는데, 발상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아마도, 책장에 꽂히지 못하고 상자 안에 뒹굴고 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거다. 하지만 이 책이 미루고만 있었던 영화 한 편을 보게 만들었다. KBS 2TV ‘영화가 좋다’를 진행하면서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었다. 러시아 영화였는데 동화 ‘인어공주’를 모티브 삼았다. 영상이나 여배우에 대한 느낌이 강렬하게 남아있어 프로그램에서 짧게 소개되는 것 말고 전체를 보고 싶었다. 멀티플렉스에서도 잘 상영하지 않는 그런 영화인지라 더욱 오기가 발동한 거다. 이름 모를 러시아 해안가에서 태어난 알리샤. 소녀는 어릴 때부터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선원이던 아버지가 술김에 저지른 애정 행각으로 태어난 알리샤. 그런 그녀가 어느 날부터 입을 닫아버린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말문을 닫아버린 알리샤. 딸이 장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모친은 알리샤를 특수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알리샤는 자신에게 마법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변두리 섬마을을 벗어나고자 마법을 이용해 태풍을 부르고,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사한다. 이 때부터 이 영화의 색다른 면이 나타난다. 대도시의 광고문구로 대변되는 알리샤의 마음에 걸맞는 수식들이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스쳐간다. 그러다 휴대전화 광고점의 악덕주인과 하반신이 불편한 여자, 여기에 사랑에 눈뜨게 해주는 사샤를 만나게 된다. 남자의 직업은 달나라를 분양하는 사기 부동산업자랄까? 황당한 설정이 적잖지만 이 영화는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코믹하지만 코믹은 아니고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현실적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마지막 가슴 허전해지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화는 보는 내내 작은 마법을 소유하고 싶게 만든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마법같은 꿈을 자주 꾼다. 어느 날의 로또, 우아한 사랑에 색다른 영웅주의까지. 이 영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큰 마법은 ‘주변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나’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를 아는 내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밤 9시에는 사람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소식만을 전해주고 싶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바람이 이루어지길 믿어본다. 조수빈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 이후 영화를 보고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끄적이기 시작함. 영화에 중독된 지금,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나 영화 관련 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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