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은살벌한서바이벌게임

입력 2008-12-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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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에 한명씩  잘라 내더군요” “성화! 당신 차례야!” 이름이 불리기 무섭게 무대로 뛰어나간다. 즉시 그들이 요구하는 춤을 보여야 한다. 발레를 시키기도 하고, 시범을 보인 춤을 따라해 보라고도 한다. 기계적인 부분도 필요하지만, 상상력도 빼놓을 수 없다. 심사위원이 “너는 돌이고, 너는 심장이고 너는 사람이다”고 말하면 바로 춤으로 표현해야 한다. 태양의 서커스 오디션 장면은 케이블 TV에서 보던 모델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된다. 탈락하면 바로 굴욕의 뒷모습을 보여야 한다. 1분 전까지 함께 웃던 지원자라도, 1분 뒤를 모른다. “한 파트를 5분 시키고 1명 자르고 또 2명 자르고… 계속 잘라요.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고요. ‘다 잘려나가는데, 내가 요 부분에서 살점이 안 떨어져나가면 기분이 좋겠구나’생각했어요.” 그에게는 “파이어볼(fireball)이 돼라”는 요구가 떨어졌다. 순간 이게 불공인지 불같은 공인지 판단도 안 섰다. 의미를 알 수 없어 숨 막힐 것 같은 눈 깜박할 시간이었다. 그는 ‘공이 생명이 있다면 얼마나 뜨거울까?’가 번뜩 떠올랐다. 강한 비트의 음악이 흐르자 ‘구른다고 공이 아니다’고 생각하며 “뜨거워서 난리가 나서, 물을 찾는 공”을 표현했다. 영화 ‘캐스트어웨이’의 배구공‘윌슨’처럼 김씨는 그 자리에서 사람인 것만 같은 공으로 돌변했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기 마련. “여기가 바(bar)라고 가정하고, 유혹하는 연기를 하라”는 문제도 나왔다. 다른 이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오버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일상적인 부분을 보여줬다. “만일 제가 나이트클럽에 갔는데, 모르는 친구가 마음에 드는 경우를 상상했어요. 말을 할 수는 없고, 눈치를 주는 표정을 짓다가 점점 다가가 장난도 치고…창피하니까 술도 마시고, 약간의 실수도 하면서 전화번호를 따는 거죠.”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상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연기를 했다. 오전 9시부터 7∼8시간 진행된 오디션 셋째 날, 피 말리는 오디션이 끝나고, 합격이 결정됐다. 끝은 아니었다. “이젠 자르지 않겠으니 좋은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라”고 했다. 전통춤을 추는 지원자도 있었고, 소리를 지르는 지원자도 있었다. 김 씨는 바지춤을 느슨하게 해 서커스 크라운 같은 콩트를 선보였다. 손을 들어 인사를 하면 헐렁헐렁한 바지가 벗겨지는 코믹 퍼포먼스였다. 결국 90여 명의 지원자 중 최종 11명이 오디션을 통과했다. 뒤풀이도 하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김 씨는 처음부터 합격의 운이 따랐는지도 모르겠다. 오디션 내내 옷핀으로 꽂아둔 시험번호명찰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그가 받은 번호는 럭키 세븐이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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