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한결같은졸업꽃다발의미스터리

입력 2009-02-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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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대학생인 우리 딸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크고 싱싱한 생화로 만든 아주 예쁜 꽃다발을 들고 딸 졸업식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꽃다발에 얽힌 특별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집은 2남 5녀 칠남매에 저는 넷째, 다섯째랑 막내가 아들입니다. 당시 저희 엄마는 아주 알뜰한 분이셨는데, 그래도 제 위의 언니들 졸업식에 가실 때는, 당시로서는 귀하디 귀한 꽃다발을 꼭 들고 졸업식장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언니 세 명의 졸업사진을 보면 꽃다발의 모양이나 색상이 모두 같다는 접입니다. 세월이 몇 년씩 흘렀는데도, 엄마가 가지고 간 졸업 축하용 꽃다발은 망가지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고 한결같은 색과 모양을 뽐냈습니다. 바로 조화였던 것입니다. 30년 전에는 조화를 비닐로 만들었는데, 그 조악한 비닐 꽃다발을 들고 엄마는 큰언니 졸업식 때도 가고, 둘째 언니 졸업식 때고 가고, 셋째언니 졸업식 때도 들고 가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졸업하는 날, 그 날도 엄마가 그 꽃을 가져오실 것 같았습니다. 제가 미리 그랬습니다. “엄마. 내 졸업식 때는 그냥 빈손으로 오세요. 절대 다락방에 있는 저 조화는 절대 들고 오지 마세요” 하니까 “아니 저 꽃다발이 뭐가 어떻다고 그러냐? 어차피 사진으로 보면 생화인지 조화인지 아무도 모를 텐데 뭐가 어떻냐?”고 했습니다. 저는 “왜 몰라요!! 우리 집 사진첩 통째로 보면 바로 드러나는데! 꽃다발 없이 난 그냥 사진 찍을 거니까 제발 빈손으로 오세요” 하면서 계속 말렸습니다. 엄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알았다. 그러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날 저는 개근상도 받고, 우수상도 받고 상장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저희 엄마가 저만치 멀리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셨는데, 어? 손에 꽃다발이 들려있는 겁니다. 전 속으로 ‘어머. 엄마가 나 때문에 꽃다발을 사 오신 거야? 생전 이런데 돈 안 쓰시는 분이 웬일이래?’ 하면서 그래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엄마한테서 꽃다발을 받았는데, “엄마. 꽃다발이 좀” 하면서 저는 머뭇머뭇 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가 주시는 그 꽃다발을 내려다보니까 저희 집에 있었던 익숙한 그 조화들이 가득 들어있는 겁니다. “어떠냐? 네가 하도 똑같은 꽃다발만 들고 다닌다고 그래서 내가 계단식으로 모양을 좀 변형시켰는데. 키를 조금씩 조절하고, 위치를 바꿔서 다시 묶었더니 자 봐라, 새 꽃다발 같지?”하시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의기양양해 하셨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저는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엄마가 이런데 돈을 쓸 턱이 없지. 에휴∼ 괜히 좋아했잖아’ 하면서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사진을 꼭 찍어야한다며 남들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시며 “여기 꽃다발이 잘 나오게 해주세요. 우리 딸내미는 자기 얼굴보다 꽃다발이 더 중요한 앱니다” 이러시며 사진을 찍었답니다. 더 황당한 건 그 다음 해, 제 남동생 졸업식 때는 엄마가 생화를 사가지고 가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밑에도 그 밑에도 저희 집 형편이 그 때부터 좋아진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조화 꽃다발의 마지막 수혜자(?)가 바로 제가 된 셈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식들 졸업식에 참석해야할 만큼 제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습니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에 졸업한 많은 분들 차분하게 새 출발 잘 하시기 바랍니다. 경북 포항|박혜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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