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손맛은없어도노력은100점

입력 2009-02-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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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퇴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출발했어? 내가 청국장 끓여놨는데, 고등어도 구워놨으니까 오늘은 어디 가지 말고 빨리와∼” 쌀쌀한 날씨에 구수한 청국장이라 저는 아내의 전화에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정말 맛있긴 맛있을까? 청국장 구수하게 끓이는 거 어려운데… 이 사람이 맛을 제대로 내긴 했을까?’하고 의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영∼ 아니올시다’였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기술, 밥 할 때 밥물 맞추는 것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어떤 날은 절 불러서 “여보 이 정도 물 넣으면 될까? 지난번에도 이 정도 넣지 않았어?” 하면서 물 맞추는 것까지 제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러다 그 날 밥이 질기라도 하면 “당신이 물 이만큼 넣으면 된다고 했잖아∼ 아 몰라∼ 그냥 먹어. 진밥이 소화도 잘 되고 좋아!” 이러면서 그 날 밥이 잘 안 된 걸 제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장모님의 딸이 맞을까 의심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6개월 후에 계량컵으로 몇 인분인지 재고, 물을 맞추게 된 압력밥솥이 나오면서 비로소 질지도 되지도 않은 제대로 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압력밥솥 살 때 아내가 했던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머나∼ 세상에는 나처럼 밥물 못 맞추는 사람이 많나 봐∼ 어떻게 이런 제품이 다 나왔을까? 아휴 신통방통해라∼” 그러면서 그 밥솥을 닦고 또 닦고 신주단지 모시듯 했습니다. 밥이 그 정도였으니 반찬은 오죽했겠습니까? 멸치볶음은 신혼 초나 지금이나 맛이 비슷합니다. 불 조절을 못하는지 호박볶음이나 가지볶음이나 죄다 뭉개져서 눈으로 보면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입니다. 간단한 두부조림도 간을 못 맞춰서, 싱겁거나 짜거나 하여튼 한번에 OK한 음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참 감사하게도 장모님께서 김치며 된장이며 마른반찬 몇 가지를 보내 주셔서 매끼 굶지 않고 먹고 있습니다. 제 누나가 가끔씩 팥죽이며 갈비찜이며 별미 음식을 가져다 줘서 그 덕에 15년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한 것이 제가 보기에도 음식 솜씨가 없고, 본인이 생각해도 음식 솜씨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아내는 끊임없이 노력은 합니다. 가끔씩 아이들 간식 만들어 준다고 요리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반찬 만드는 법이 나오면 꼭 오려서 냉장고에 붙여두기도 합니다. 어쩌다 외식하면서 입에 맞는 반찬이 있으면 그 집 주인한테 꼭 물어 봅니다. 지난번에도 부부동반 모임 때 아귀찜을 먹으러 갔는데, “아줌마 이거 너무 맛있어요∼ 이거 어떻게 해요? 여기다 뭐 넣으신 거예요?” 하면서 꼼꼼하게 메모하는 아내를 보며 저는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여보 그 때 먹었던 아귀찜 정말 맛있었지? 내가 해 줄게. 언제든 먹고 싶으면 말해∼” 그럴 때마다 저는 “다음에…”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음식은 못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내 모습이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아내도 제대로 간 맞추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간 좀 못 맞추면 어떻습니까. 음식이 짜면 밥 두 숟가락 먹으면 되고, 싱거우면 밥 좀 덜 먹으면 됩니다. 아내가 끓여준 청국장, 그래도 추운 날 제 몸 녹여주기엔 충분했습니다. 경기 안산|손봉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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