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행복한아침편지]도둑맞은경험

입력 2009-05-22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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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여전히 벌벌 떨면서 자기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너무 무서웠다고 하더군요.

친구가 잠을 자고 있는데, 잠결에 화장대 서랍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큰 딸은 미국에 유학 가 있고, 아들은 학교 근처에서 하숙하고 있고, 집에는 친구네 부부밖에 없었는데 남편은 옆에서 자고 있고, ‘지금 누가 화장대 서랍을 여는 걸까’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처음엔 그냥 꿈인가보다 했답니다. 그리고 돌아누웠는데, 세상에나… 바로 눈앞에 시커먼 그림자가 떡 하니 서 있었대요.

제 친구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도둑이야~!’하고 소리칠 뻔했는데, 너무 무서우니까 목소리도 안 나오고, 입도 안 벌어졌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니까, 괜히 소리 지르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냥 숨죽이고 자는 척을 했다고 하더군요.

속으로는 ‘야, 거기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만 뒤지고 얼른 나가. 우리 집에 아무 것도 없어’이러고 있었답니다. 정말 뒤져봐야 별로 나올 게 없으니까, 그 도둑이 앉은 자세로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나갔대요. 그리고 잠시 뒤 베란다 창문이 조용히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요즘 날씨가 따뜻해서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잤는데, 아무래도 그쪽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렇게 도둑이 나가자마자, 친구는 옆에 있던 남편을 쿡쿡 찌르며 “여보, 도둑… 도둑… 우리 집에 도둑 들었어” 하고 겨우 말했대요. 그러자 남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뭐? 도둑? 어딨어~ 이 놈 어딨어?” 하면서 앞뒤 생각도 안 하고 무조건 거실로 뛰어나가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도둑 간 다음에 깨우길 잘했다 싶더래요. 안 그랬으면 성격 급한 남편이랑, 도둑이랑 뭔 일 났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요.

어쨌든 그 때가 새벽 2시였는데, 경비실에 연락하고, 경찰에 신고해서 형사들도 왔다가고, 아주 난리법석을 떨었다면서 잠을 못 잔 퀭한 눈으로 얘길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다행스러운 건, 특별히 없어진 물건은 없었고, 거실 탁자 위에 지갑이 놓여있었는데, 그 속에 현금만 없어졌다고 합니다.

카드는 일절 손도 안 대고 현금만 가져간 걸 보면, 초보에, 좀도둑에, 생계형 도둑일 가능성이 크다고, 경찰이 그랬다 네요. 하지만 도둑이 그렇게 한번 들고나니 무섭다면서, 당분간 혼자 못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제가 결혼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 저희 집에 도둑 들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저희는 2층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저희 집도 창문을 통해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저희가 맞벌이를 해서 낮에는 항상 집이 비어있었는데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저희 집 패물이며 귀중품을 몽땅 가져가 버린 겁니다. 그 다음부턴 어찌나 무섭던지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거기서 또 도둑이 든 겁니다. 그러고 나니 정말 친구 말대로 혼자 빈집에 들어가는 게 가장 무섭더군요.

마치 어둠 속에 누군가 숨어있다 갑자기 확~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앞집 사는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려, 퇴근 후엔 항상 앞집 아주머니랑 같이 저희 집 현관문을 열었고요, 거실이며, 안방이며, 주방이며, 집안에 불을 모두 켠 후에야 혼자 집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이란 참 무섭죠. 제 친구 얘기를 듣는데, 그 오래된 옛날 일이 고스란히 떠오르면서 갑자기 온몸이 오싹하게 소름이 돋더라고요. 저희 집도 최근에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잤는데, 앞으로 문단속 더 신경 써서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도둑조심 해야 할 것 같아요.

경기도 부천시 | 신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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